문화곳간, 조선 여인들의 화장법ⓒ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6
문화곳간, 조선 여인들의 화장법ⓒ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6

유교문화 영향, 단정하게 꾸며
미분에 물·기름 섞어 펴 발라
연지 대신 고추 말린 한지 사용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따뜻한 봄 날씨가 한창이다. 추운 겨울이 지난봄에는 옷 색도 밝아지고, 여성들의 색조 화장도 화사해진다. 요즘에야 화장법이 발달해 다양한 색조화장품을 기호에 맞게 어디서든지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여성들은 어떻게 화장을 했을까.

◆쌀이나 분꽃씨의 흰 가루 사용

조선시대 화장 문화는 검소하고 실리를 강조했던 유교 윤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화려한 화장보다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 단정한 몸가짐을 유지하면서 내면과 외면의 미(美)를 함께 중시했다.

여성의 경우 백분을 옅게 바른 자연스러운 화장을 선호했다. 다만, 혼인이나 연회 때에는 눈썹과 연지를 짙게 칠하는 분대화장이 허용됐다. 분(粉)은 주로 쌀이나 기장, 분꽃씨의 흰 가루를 사용했으며, 미분이나 백분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얼굴색에 맞는 화장품이 나오는 것처럼, 옛 여인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깔의 분을 만들기 위해 미분에 칡가루나 황토를 섞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분이 얼굴에 잘 붙지 않았다. 그래서 물과 기름에 개어서 사용했고, 분첩이나 누에고치로 펴 발랐다. 눈썹을 그릴 때는 주로 굴참나무나 너도밤나무의 목탄을 썼다.

상류층 여성은 눈썹먹을 기름에 개어서 사용했다. 먹은 식물을 태운 재나 그을음으로 만들었다. 재료에 따라 검은색이나 검푸른색, 짙은 밤색 등을 만들었다. 눈썹이 진하고 숱이 많은 경우에는 족집게로 숱을 다듬었다. 이어 금가루나 누런 분을 발라 부드럽고 옅은 색을 냈다.

볼과 입술에 발랐던 붉은 색조화장품인 연지는 보통 홍화에서 추출했다. 평소에는 가루나 환(丸) 형태로 만들어 뒀다가 필요할 때마다 기름에 개어서 사용했다. 연지는 귀해 고가의 화장품에 속했다. 그래서 서민들은 붉은 고추를 말려 뒷면에 한지를 덧대고 둥글게 오려 붙였다.

◆화장법 적힌 ‘규합총서’

사대부 집안은 화장에 대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를 자주 봤다. 규합총서에는 여러 가지 피부 관리법이 담겨 있었다.

“겨울에 얼굴이 거칠고 터질 때는 달걀 세 개를 술에 담가, 김이 새지 않도록 두껍게 봉하여 두었다가 얼굴에 바른다. 그러면 트지 않을 뿐더러 옥같이 고와진다. 얼굴과 손이 터서 피가 나거든 돼지 발기름에 괴화(회화나무의 꽃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를 섞어 붙이면 낫는다.”

여성들 못지 않게 남성도 청결한 몸과 치장을 중시했다. 남성의 화장은 자신을 단장해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 기품이 서리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조선 후기 안정복이 지은 한문 소설인 ‘여용국전’에는 각종 화장품과 화장도구 20가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여용국(여자 얼굴, 국가)에 각종이 물질(적군)이 침입하자 화장(아군)으로 적군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대한제국의 명성황후는 러시아제 화장품을 즐겨 사용했다. 1915년에는 ‘박가분’이라는 화장품이 처음 만들어졌으며 1937년에는 납 성분이 들어있다는 소문이 돌아 폐업했다. 일제강점기에 국내 화장품 산업은 침체기를 겪었고, 한국 전쟁 이후 화장품 제조기술의 발달로 화장품 산업의 성장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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