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한국기술금융협회 IT 전문위원

 

필자의 이전 ‘공개키암호화’ 칼럼에서 소수, 즉 1과 자신으로만 나누어질 수 있는 수로 인수분해 형식의 암호화를 하는 RSA알고리즘 기반의 공개키암호화(PKI) 방식에 대해 설명해 드린 바 있다. 소수의 인수분해라는 난해한 방식을 사용하는 암호 해독을 위해서는 슈퍼컴퓨터 계산 능력으로도 약 20년가량이 소요돼 실질적으로는 암호해독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러나 만약 양자컴퓨터가 등장한다면 또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양자컴퓨터는 현재 사용 중인 컴퓨터와 어떤 점이 달라 현재 컴퓨터보다 수만~수십만배 이상의 연산속도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의 기본적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데 현재 사용 중인 컴퓨터의 연산은 이진수 즉 ‘0’과 ‘1’의 비트의 조합으로 문자, 그림, 수식을 표현하고 계산을 하는 구조이다. 즉 현재의 컴퓨터는 반도체 트랜지스터의 on/off 상태에 따라, 메모리셀의 전하 존재 여부에 따라, 하드 디스크의 자기화(magnetization) 방향에 따라 각각 ‘0’과 ‘1’의 정보가 만들어지고 주어진 알고리즘에 의해 ‘0’과 ‘1’을 결정하는 로직을 통해서 데이터가 처리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양자컴퓨터에서는 ‘큐비트’라는 정보를 사용하는데, 기존 컴퓨터가 위에 설명된 바와 같이 ‘0’과 ‘1’의 비트를 별도로 저장해 표현하는 데 비해, 큐비트는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큐비트가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은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 양자역학적 현상으로 인함이며, ‘0’과 ‘1’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아닌 어느 단계에서는 확률적으로 ‘0’과 ‘1’이 중첩된 확률적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즉 큐비트는 ‘0’과 ‘1’이 중첩된 ‘01’의 값을 동시에 가질 수 있게 된 것으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존 컴퓨터는 정보의 단위인 비트의 수(n)가 늘어나면 계산공간이 비트 수에 선형적으로 늘어나게 되지만(2n), 양자컴퓨터는 큐비트의 수가 늘어나면 계산공간이 지수합수적(2n)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상상을 초월한 양의 정보처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직선형 그래프와 지수함수 그래프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잘 확인할 수 있게 되며, 

이같이 독특한 정보처리 방법을 양자병렬(quantum parallelism) 처리라고 한다. 1800년대 말 독일 물리학자 막스플랑크의 발견에서 출발해, 그동안 IT분야에서는 양자물리학을 응용해 레이저, 반도체 등의 첨단 제품을 개발해 왔다. 양자컴퓨터의 개념도 바로 이 양자물리학에서 비롯된 것이며, 양자역학의 원리가 컴퓨터 연산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은 1980년대 초반 양자역학의 거두인 미국 캘리포니아공대(CallTec)의 리차드 파인만 교수였다. 그는 양자컴퓨터라는 용어나 구체적인 연산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양자시스템이 복잡한 물리적 현상을 시뮬레이션 하는 데 매우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후 옥스포드대학의 데이비드 더치 교수가 양자역학적 현상을 이용한 데이터 처리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전 세계 학계에서는 양자컴퓨터에 대한 연구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프랑스의 아로슈 교수, 미국의 와인랜드 박사가 제시한 ‘개별 양자계의 측정 및 조작’을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인 실험기법을 제시함으로써 양자컴퓨터 개발을 본격화하는 데 일조를 더했다. 현재 양자컴퓨터의 개발 수준은, 우리가 사용하는 현재의 컴퓨터 수준으로 볼 때 1900년대 초에 발명한 진공관 개발 시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그 수준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아직은 양자컴퓨터의 개발은 갈 길이 적잖게 남아 있으며, 실제 실용화되기까지는 적게는 수십년의 세월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공관의 개발이 트랜지스터로 전환되고 다시 반도체로 전이되면서 획기적인 IT분야의 발전을 이루어 왔던 인류의 놀라운 능력은 십년 이내의 양자컴퓨터 상용화가 이루어지더라도 별로 놀랍지 않은 팩트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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