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대길’ 입춘첩도 부적의 하나…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상징적 의미

 ◆‘강시’ 잡는 부적(符籍)

▲ 부적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양손을 앞으로 뻗고 두 다리로 콩~콩 뛰면서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좀비(귀신) ‘강시’를 기억하는가. 1980년대 여름이면 무서운 얼굴을 한 강시가 브라운관을 강타하고, 아이들은 저마다 강시 흉내를 내며 교실이나 운동장을 콩콩거리기 일쑤였다. 몸이 굳어 콩콩거릴 수밖에 없는 불쌍한 귀신 강시(?屍)는 원래 얼어 죽은 시체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던 것이 중국 명나라 중엽부터 얼어 죽은 시체에 죽은 자들의 원혼이 깃들어 사람들을 해치는 좀비로 그려지게 된다. 이런 강시 전설은 청나라에 들어 성행해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강시의 복장이 대체로 청나라 시대의 복식을 하고 있다.
힘이 강해 물건을 산산조각 내고 사람들을 해치는 강시를 물리치는 방법이 있는데 그 하나가 바로 ‘부적’을 이마에 붙이는 것이다. 이 부적을 강시의 이마에 붙이는 순간 강시는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된다. 그런 후에 강시를 잡는 도사가 흔드는 방울소리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 무서운 귀신 강시를 잡고, 집안의 액운을 없애준다는 ‘부적’에는 과연 우리가 모르는 무슨 힘이 있는 것인가. 우리네 문화 속에 녹아있는 부적과 그 안에 담긴 종교적인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처용 화상’에서 시작
‘부적’은 악귀를 쫓거나 복을 가져오기 위해 몸에 지니는 주술도구를 일컫는다. 보통 종이 위에 글씨·그림·기호 등을 쓰거나 그린 것으로 한국에서 부적의 기원으로 대표적인 예는 ‘처용(處容)의 화상’을 들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처용이 자신의 아내를 범한 역귀(疫鬼)를 죽이는 대신 노래와 춤으로 감복시킨 이야기가 나온다. 처용의 태도에 감복을 받은 역귀가 앞으로는 처용의 화상이 그려져 있는 곳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에서 부적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부적이라고 하면 불교나 민간신앙에서 많이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네 풍습에서도 이런 부적 문화에 대한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봄이 오면 집집마다 대문에 붙이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귀가 쓰인 입춘첩(立春帖)이다.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붙이는 입춘첩 또한 부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귀신 쫓고 행운·생명기원
부적에는 보통 황색·주색(朱色)·적색(赤色)이 사용되는데 각각 그 의미가 있다. 특히 황색은 광명을 뜻하는 것으로 악귀가 가장 싫어하는 빛이라고 한다. 성경에도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한다(요 1:5)’는 말씀이 있다. 대체로 어두움은 악마, 귀신, 마귀 등을 상징한다. 이들 귀신들은 훤한 대낮이 아닌 칠흑 같은 밤에 활동하며, 그 속에 생명이 아닌 사망과 거짓과 속임이 가득하기 때문에 어두움으로 표현된다. 주색은 중앙아시아 샤머니즘에서 귀신을 쫓는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며 적색은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정화하는 힘을 지녔다고 본다. 즉 부적은 그 색(色)만으로도 귀신을 쫓아내고, 부적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행운이나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현재 민간에서 무당이 쓰는 부적과 절에서 승려가 그리는 부적 등이 있는데 부적을 만들 때는 택일을 하고 목욕재계를 해야 하며 주문을 외우게 되어 있다. 부적을 사용하는 방법은 아픈 곳에 붙이거나 불태워 마시기도 하고, 벽이나 문 등에 붙이거나 몸에 지닌다. 역모를 꾀하는 역사드라마나 귀신이 등장하는 <전설의고향>과 같은 납량특집극에 자주 등장하는 부적 중에는 베개 속에 넣어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있는데 이렇게 남을 해하는 부적은 사용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에게나 좋지 않는 영향을 끼쳐 잘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부적, 비싼 부적을 그린다고 해도 당사자의 마음이 간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운이 오기를 바란다면 신의 마음을 감동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경건하고 성실한 삶, 남을 위한 삶을 사는 마음가짐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보면 부적은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라 할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신을 향한 간절함과 신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복은 절로 오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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