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人을만나다] 요부 장녹수, 예인(藝人)으로 새롭게 태어나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종전의 장녹수에 대한 이미지를 탈피한 새로운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정혜진 안무가와 오경택 연출, 조하늘 무용수가 오는 12월 29일까지 오후 4시마다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 올라가는 무용극 ‘궁: 장녹수전’을 통해 그동안 조선의 요부·악녀로 묘사된 장녹수를 예인(藝人)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를 이수한 안무가와 연극·뮤지컬·가무극을 오가며 다양한 공연을 무대에 올린 연출가, 정동극장 상설공연팀 무용수를 만나 그들이 새롭게 그린 장녹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정혜진 안무가, 오경택 연출, 조하늘 무용수와의 일문삼답.

-장녹수를 예인으로 묘사한 배경은 무엇인가. 또 장녹수·연산군·제안대군이 삼각관계였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역사왜곡에 대한 우려는 없었나.

정혜진(정): 내가 장녹수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생각해보니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자가 그려졌다. 그래서 예인이었지만 제도 속에 갇히지 않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권력을 향해가는 정치가의 모습으로 장녹수를 풀어냈다. 일반 기녀 이야기라면 해학적으로 만들기 쉽지만 장녹수를 다루려면 폐비 윤씨와 연산군의 말로 등이 가미돼야 해서 고민이 많이 됐다.

제안대군과 장녹수 사이에 러브라인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제안대군은 예술을 사랑했는데 장녹수가 그의 눈에 들었고, 기녀로 길러지게 됐다. 연산과 장녹수를 연결시켜 준 사람이 제안대군이다. 극을 해학적으로 만들려다 보니 여러 방향을 생각하다가 삼각관계로 설정하게 됐다.

오경택(오): 실존인물을 다루는 것인 만큼 역사왜곡을 염려했다. 예인 장녹수로 초점을 맞춘 건 역사적 사료를 보고 결정한 것이다. ‘연산군일기’ 등에 따르면 기녀인 장녹수는 연산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결혼해 아들이 있었고, 동안이긴 했으나 절세가인은 아니었다.

그가 어떻게 왕을 사로잡았는지 생각하다가 그의 기예에 집중했다. 작품은 장녹수를 뛰어난 예인이라고만 주장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껴입고 파멸에 이르는 긴 여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고자 했다.

대사 없이 진행되는 극이다 보니 장녹수·연산·제안대군의 관계를 쉽고 명쾌하게 만들기 위해 상상력을 더해서 삼각관계를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세 사람은 기예와 관계가 깊다. 연산군은 처용무를 스스로 출 정도로 풍류를 즐겼고, 제안대군도 시·서화·음악을 좋아했던 인물이다. 장녹수는 이루 말할 것도 없이 기예에 있어 특별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조하늘(조): 작품에서 장녹수를 왜곡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기예가 특출난 것도 사실이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도 공연에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어떤 춤을 췄을지 생각하며, 춤으로 그의 삶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동안 알려진 장녹수 이미지와 다른 예인 장녹수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정: 역사 자료에는 장녹수가 어떤 춤을 췄는지에 대한 것은 기록돼 있지 않다.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에 집중해야 했는데, 나는 장녹수를 리듬감이 뛰어난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 평소에 동해안 별신굿의 드렁갱이장단을 참 신비하고 어려운 장단이라고 생각했다. 장녹수가 이 장단을 쉽게 가지고 논다면 예인으로서의 면모가 뛰어나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안무로 넣었다. 조하늘 무용수가 표현을 잘 해줘서 탁월한 장면이 나왔다.

오: 나는 예인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유분방한 캐릭터를 표현하고자 했다. 동시대 관객에게 보여야 하기 때문에 아이돌 춤을 추게 하자고 제안했고 이 제안이 안무에 반영됐다. 그리고 정혜진 안무가가 만들어 놓은 안무가 워낙에 많았다. 연출로서는 그 안무들을 드라마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이어갈지 생각하는 게 관건이었다.

조: 장녹수가 어떤 춤을 췄을지 생각하며, 춤으로 그의 삶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또 연기적으로는 그의 이중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장녹수는 노비출신으로 기생이 됐다가 궁에 들어가는 인물이다. 신분이 상승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급하게 껴입는데서 오는 내면의 갈등을 보여주려고 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춤은 모두 상상해서 재구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만들었나. 조하늘 무용수는 어떤 안무를 가장 열심히 연습했나.

정: 해외 관광객에게 우리 춤에 대한 것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춤을 추면 좋을지를 먼저 나열하고 작가·연출과 논의했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우리나라 춤이 장고춤, 살풀이 춤 등이다. 기생과 관련된 춤은 교방 굿거리라는 춤인데, 이 모든 것을 드라마의 필요한 장면에 넣으려고 했다.

또 가인전목단, 선유락과 같은 궁중무용을 모티브로 창작무용을 만들어 극에 배치했다. 가인전목단은 연산군보다 후대인 순조 때 효명세자가 왕권확립을 위해 만든 춤이기는 하나, 시대적으로 아예 없던 춤은 아니다. 송나라에서도 췄고, 고려 팔관회에서도 췄다. 목단(모란, 牧丹)이 부귀영화와 권력을 상징하기 때문에 장녹수가 입궐한 후 열린 대례식에 이 꽃을 사용한 안무를 넣으면 아름다운 모습이 부각될 거라고 생각했다. 선유락은 배를 이용한 춤으로 무게감 있는 엔딩을 만들기 위해 넣게 됐다.

공연 시간이 정해져 있어 없애거나 길이를 줄인 안무도 있다. 군무로 진행되는 검무는 삭제했고, 답교놀이·정업이놀이 등은 축약됐다. 공연시간이 2시간이라면 다 넣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조금 아쉽긴 하다.

오: 작품 안에서 민속·기방·궁중 무용을 다 다루고자 했다. 총 15~16개의 무용이 나온다.

조: 저는 녹수와 연산의 신하들이 싸우는 장면을 가장 열심히 연습했다. 신하 역을 맡은 무용수들이 들고 있는 북 8개를 쳐야하는 팔고무 장면인데, 북이 고정돼 있지 않고 움직인다.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북채로 내 손등을 때린 적도 많다. 감정신이라 연기적인 부분도 보여줘야 해서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지금까지도 어려운 장면이고, 제일 많이 연습하는 부분이다.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장녹수의 어떤 점을 발견했으면 하는가.

정: 공부를 해보니 장녹수는 권력 앞에서 비굴해지는 여자는 아닌 것 같다. 왕에게도 자기 할 말을 다 하고, 진실 됨을 말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당당함은 현대의 우리가 추구하는 여성의 모습과 같다.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고 가면 좋겠다.

오: 예술을 사랑했고 재능과 매력이 있으며 본인의 의지와 욕망에 솔직했던 여인으로 느껴준다면 감사하겠다.

조: 기존에 장녹수를 악녀로 생각했다면, 이 공연을 보고 난 후에는 발랄하고 지적이면서 춤을 사랑하는 예인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