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거취를 놓고 정국이 혼미하다. 야권은 한목소리로 해임이나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있지만 임명권자인 청와대는 여전히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기식 원장과 관련된 여러 의혹들이 불법은 아니며 원장직 수행의 결격 사유도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국민적 눈높이에는 이르지 못한 점은 반성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한마디로 도덕적 문제는 있지만 법적 문제는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태도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많은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키고 있다. 청와대라는 공간은 그 자체가 고도의 정치 영역이다. 법적 문제로만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적 문제와 함께 정치적, 도덕적 문제까지 함께 고려해야 할 총체적 권력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적 정서까지도 배려해야 한다. 그것이 청와대 권력을 바라보는 ‘국민적 눈높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단지 법적 문제는 없다는 식으로 김기식 원장을 감싸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무엇을 우려해 법적인 문제로 접근하는지 정말 그 속내가 궁금할 정도이다. ‘촛불혁명’ 이후 높아진 권력에 대한 도덕적 요구는 이제 외면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법적인 문제가 없다면 정치적, 도덕적 일탈 정도는 크게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인가. 벌써부터 민심과 멀어지는 듯한 청와대의 이런 태도가 참으로 걱정이다.

열 번 양보해서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하자. 그러나 이런 사실을 청와대가 밝히는 것도 적절치 않다. 이번 사건은 이미 야권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사안이다. 법적인 쟁점은 검찰이 수사하고 최종적으로 사법부에서 가릴 일이다. 그것이 수순이고 상식이다. 그럼에도 검찰과 사법부를 어떻게 보길래 청와대 권력이 앞장서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하는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 또한 검찰과 사법부에 일찌감치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고 비판하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이번 김기식 원장 사건의 뒤에는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일부 연관돼 있음을 모르는바 아니다. 혹여 그 핵심 인사들의 위상이 흔들릴까봐 방패막이로 ‘김기식 해임 불가’를 고수하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김기식 원장이 사퇴할 경우 마치 도미노처럼 다른 현안들까지 줄줄이 양보하거나 끌려 다닐 수 있다는 우려도 아니길 바란다.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는 ‘촛불혁명’을 내세울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은 이전 정권보다 훨씬 더 높은 도덕성을 원하고 있다. 틈만 나면 ‘국민’을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가. 국민을 믿어야 한다.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가 국민의 수준을 믿지 못하면 답이 없어진다. 부디 이전 정권의 몰락을 ‘과거지사’로 치부하지 않길 바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