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강직하고 조직의 혁신을 이끌어 낼만한 인물이다. 게다가 기득권 세력의 주류 논리에 물들지 않았으면서도 수준 높은 정책통이었다. 과거 비록 짧게나마 김기식 금감원장과 함께 시민단체에 몸담았던 필자에게 각인된 그에 대한 인상이다. 김기식 원장은 ‘참여연대’가 명성을 날릴 무렵 당시 사무처장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이 조직을 이끌었던 사실상의 쌍두마차였다. 따라서 김 원장은 오늘의 ‘참여연대’를 일궈낸 핵심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일천했던 한국 시민단체의 위상을 높였던 시대적 주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시민단체 발전에 미친 김 원장의 공은 지대하다.

시민단체는 말 그대로 시민들의 지지와 참여 없이는 하루도 존재할 수 없다. 시민단체 간부라고 해서 무슨 큰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도의 보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국가발전에 대한 소신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시민단체 인사들은 청렴성과 도덕성을 큰 미덕으로 삼고 있다. 비록 여기저기서 상처가 많이 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시민단체의 도덕성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신뢰의 뿌리이다.

최근의 김기식 금감원장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록 국회의원 시절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혁신 한 축으로서 김 원장의 역할만큼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단체 출신의 정치인으로서 그에 대한 도덕성과 엄정함은 당연한 것으로 믿었다.

정치에서 뒤틀리다 

그러나 최근 김기식 원장 측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보노라면 안타깝다 못해 실망적인 언행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국회의원 시절에 있었던 여러 의혹들을 보노라면 솔직히 부끄럽다. 물론 기대가 컸던 탓일 것이다. 김 원장이 과거 시민단체 시절 그토록 비판하고 바꾸고자 했던 ‘적폐’들을 ‘국회의원 김기식’이 답습했다니 그저 놀랄 뿐이다. 게다가 그것을 ‘관행’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우선 아무리 ‘공무’라고 하더라도 산하기관 돈으로 출장을 가는 것은 안 된다. 자칫 위법의 소지가 있을 뿐더러 그동안 ‘갑질 국회의원’의 특권을 얼마나 많이 비판했던가. 그래도 괜찮다면 국회는 누가 지킬 것인가. 심지어 그 일정이란 것도 ‘공무’인지 ‘외유’인지 모호하다. 정치인들의 외유, 지금껏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그토록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국회의원 김기식’마저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해외 출장 때 ‘인턴 여직원’과의 두 차례 동행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미투 운동’의 연장선에서 본다는 뜻이 아니다. 자칫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을 뿐더러 상식에서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석사학위까지 받은 ‘인재’ 운운하는 변명은 더 초라하다. 그렇다면 사무실의 다른 보좌진들은 ‘인재’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또 있다. 임기 말 국회의원 재선에 도전하려다가 실패하면서 정치후원금이 3억원쯤 남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후원회를 해산하기 전에 이 돈을 반환하거나 국고에 귀속시키도록 정치자금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김 원장은 소속 당과 자신이 주도한 연구소에 기부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일부는 해외출장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 정치후원금 ‘땡처리’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다른 국회의원들이 그런 식으로 임기를 마무리 하더라도 ‘국회의원 김기식’은 달랐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국회에 들어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나만 더 짚어보자. 김기식 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주도해 만든 ‘더미래 연구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이사진이나 강사들의 면면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김 원장은 당시 국회 정무위 소속으로 야당 간사까지 맡았다. 금융권과 재계 등에서 가장 부담스런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소가 그들을 고객으로 삼아 고액의 강좌를 개설해 돈벌이까지 했다. 만약 국회에서 지금도 이런 행태가 계속된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어디까지가 위법인지는 따져 볼 일이지만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업’을 벌인 것이다.

아무튼 이제 그가 금감원장에 임명됐지만 그의 도덕성, 엄정성, 개혁성에는 큰 상처가 나버렸다. 금융권 혁신의 칼을 쥔 수장으로서의 기본적인 신뢰성에 금이 가버린 셈이다. 앞으로 무슨 권위가 서겠으며 누가 그의 말에 공감할 수 있겠는가. 마침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김 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야권이 일제히 김 원장 해임을 촉구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전혀 그럴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야권이 김 원장을 놓고 다시 날 선 대치에 들어선 형국이다. 지금 대외적으로는 북핵 외교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매우 높다. 여권 입장에서는 언제까지 김기식 건으로 싸움을 벌일 상황이 아니란 얘기다. 청와대와 야권이 모두 물러설 수 없다면 김기식 원장이 결단하는 것이 옳다. 자칫 제궤의혈(堤潰蟻穴)이 되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진사퇴’가 정답이다. 그것도 빠를수록 좋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