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우리는 불편함을 잘 참도록 교육된다. 잘 참는 것이 곧 사회생활을 잘 한다는 의미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잘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더욱 더 발전해왔다. 불편함을 참지 않고 발전시킴으로써 사회에 도움을 준 사건들은 많다.

빨대를 예로 들어 보자. 일어나 앉지 못하는 딸에게 음료를 먹여야 하는데 일자 빨대가 불편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침대보다 컵을 더 낮게 해서 먹였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었던 그녀는 빨대가 꺾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빨대를 꺾어서 먹이다보니 음료가 잘 안 들어갔을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잔주름을 잡아서 꺾기도 하고, 음료가 걸리지도 않는 방법을 생각해 냈을 것이다. 불편함을 참는 것만이 미덕이 아닌 시대이다.

더 재미있는 예를 들어보자. 1970년대였는데 미국의 ‘개리 로스 달(Gary Ross Dahl)’이라는 사람은 친구들을 만났는데, 아마 그 때도 지금처럼 애완견을 키우는 것이 유행을 했나보다. 그러니 친구들은 각자 애완견을 키우는 것의 고단함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것을 참고 듣는 데 한계를 느낀 개리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키우는 개는 아무데나 대소변을 보지도 않고, 먹는 것이 까다롭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말도 무척 잘 듣는다고 말이다. 다음 날 그는 친구들에게 ‘펫락(Pet Rock)’이라는 애완용 돌덩이를 보여주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상품화해서 팔기 시작했다. 돌멩이와 함께 펫락을 예쁘게 키우는 방법까지 동봉을 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확실하게 말을 알아듣는 두 마디 말이 있는데 하나는 ‘가만히 있어!’이고, 다른 하나는 언덕에서 ‘굴러!’라는 것이라고 소개를 했다고 한다.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겠지만 ‘펫락’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덕분에 개리는 부자가 됐다고 한다. 친구들의 불평불만을 참지 않았던 대가로 말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우리들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불편을 감수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래서 불편한 것을 너무 잘 참는다. 하지만 나만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만 잘 참아내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 더욱 잘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처럼 누군가도 불편할 수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습관처럼 해 보기를 권한다.

꼭 발명에 해당하는 그런 일이 아니어도 좋다. 언젠가 휴게소에서 주차를 하는데 기존의 방식은 오른쪽은 바로 전진해서 차를 댈 수 있지만 왼쪽의 경우 전진했다가 후진해서 차를 대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휴게소는 들어가면서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자리가 있으면 정면으로 주차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아주 작은 생각이지만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편해졌다고 생각하니 그것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에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것을 처음에 발견한 사람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했다고 생각하고 더 큰 행복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이제 불편한 것은 참아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고쳐서 편리함으로 바꿔내야 할 대상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작은 발견, 작은 생각이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행복은 의외로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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