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의 모습. 건물 앞에 있던 넓은 단인 월대가 오늘날에는 도로 밑에 묻혀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2
서울 종로구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의 모습. 건물 앞에 있던 넓은 단인 월대가 오늘날에는 도로 밑에 묻혀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2

일제강점기에 월대 사라져

해방 후 복원 기회 있었지만

교통체증 심화 우려로 무산

新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

광화문 앞 역사광장 신규 조성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궁궐 중요 건물 앞에 놓는 넓은 단인 ‘월대(月臺)’. 일제강점기에 경복궁 광화문 앞 월대가 훼손된 이후 이곳 월대는 역사 속에 잠들어있었다. 하지만 지난 10일 문화재청(청장 김종진)과 서울시(시장 박원순)가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안)’을 발표하면서 광화문 앞 월대가 세상 빛을 보게 됐다. 월대 앞을 지켰던 해태상도 원래 위치를 찾는다.

◆역사 속 경복궁과 월대의 수난

역사적으로 보면, 태조 4년(1395)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이 완공됐고 월대도 만들어졌다. 월대는 궁중의 각종 의식 등을 할 때 이용된 장소였다. 월대는 경복궁 근정전 등 궁궐 전각과 종묘, 능침 정자각 등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광화문 앞 월대는 중요 행사가 있을 때 국왕이 출입하면서 백성과 연결되던 소통과 화합의 장소였다. 월대를 둘러싼 광화문 권역 역시 국왕의 궁궐 밖 행차에서 어가 앞 상소 등을 통해 백성과 소통이 이뤄진 공간이었다. 광화문에는 의정부와 육조 관청들이 들어서 있었고 조선시대부터 핵심적인 행정기능을 수행한 장소였다.

하지만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다. 고종 5년(1868) 경복궁이 중창되면서 500여동의 건축물과 후원 등이 조성됐으나,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제에 의해 경복궁이 훼철됐다. 일제는 경복궁 공원화로 전각 4천여 간을 훼철했고, 1915년에는 경복궁 내에서 ‘시정5주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흥례문, 동궁 등 많은 전각을 훼철했다.

1926년 일제가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청사를 건립할 때는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광화문을 강제로 경복궁 동쪽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이전했다. 당초 일제는 광화문을 헐어버리려 했지만 여론의 반대가 거세지자 이전을 택한 것이었다. 이후 한국 전쟁 때 광화문의 목조 문루 부분이 포탄을 맞아 소실됐고 석축만 남게 됐다.

1906~1907년 촬영된 하마석 및 해태상 전경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2
1906~1907년 촬영된 하마석 및 해태상 전경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2

 ◆월대, 왜 복원 못 했나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남아있는 석축을 조선총독부청사 앞으로 이전하고 복원작업을 했다. 하지만 원래 위치에서 북측으로 11.2m, 동측으로 13.5m, 경복궁 중심축에서 3.75° 반시계방향으로 틀어졌으며, 문루도 목조 구조 대신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건립한 것이었다.

이후 문화재청은 1990∼2010년 ‘1차 경복궁 종합정비사업’을 추진했고, 1995년에는 조선총독부청사를, 2006년에는 철근콘크리트 구조 광화문을 철거했다. 이어 목조 문루를 가진 광화문이 복원됐다. 이것이 현재의 광화문이다. 당시 광화문 앞 월대도 복원하기로 했으나 교통 체증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 결국 월대는 복원되지 못했다. 동서십자각을 연결하는 궁장 복원 등도 이뤄지지 못하고 장기과제로 남게 됐다.

현재 문화재청은 ‘2011~2045년 2차 경복궁 종합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와 동시에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안)’을 발표하고 광화문 앞 역사 광장을 신규조성하기로 했다. 일제강점기 때 훼손됐던 월대가 복원되고 해태상은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광화문광장기획반 진명국 주무관은 “경복궁 앞에 있던 월대는 현재 도로 밑에 묻혀 있다. 고궁 앞에 차도가 지나다 보니 실제로 광화문은 역사 공간이 단절돼 있는 상태”라며 “도로를 우회시켜 살아있는 역사적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궁중의 각종 의식 등에 이용되는 넓은 단인 월대 모습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2
궁중의 각종 의식 등에 이용되는 넓은 단인 월대 모습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4.12

 ◆“월대 복원은 역사성 회복”

전문가들은 광화문 월대 복원이 역사성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정환진 주무관은 “광화문 앞 월대는 크기가 50~60미터인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길이는 발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라며 “월대는 경복궁 정문에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번 복원은 경복궁 정면부에 대한 완성의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이재준 역사연구가(전 충북도문화재 위원)는 “일제는 도시 근대화 추진 명목으로 조선의 읍성지와 한양도성을 많이 헐었는데, 대한제국의 기를 완전히 꺾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당시 일제는 우리 문화재를 마음대로 헐고 파헤쳤는데, 이는 문화재 관리의 기본 정신에서 어긋나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화기를 막고 궁중의 권위와 위엄을 강조한 해태상·사자상 역시 파괴됐었다.

이 역사연구가는 “흩어져있는 문화유산을 원위치로 보존하는 것 자체는 문화재 보존의 기본원칙”이라며 “쓰러져 있는 역사적 장소라면 복원해서 역사적 가치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는 공사 중에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면 그 자리에 유리관 등을 설치하고 유물을 보존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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