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굶은 별들이 뒤란에 내려앉고>
김수지 지음 / 문학의전당 펴냄

김수지 시인의 시집은 감성의 잔치다. 그의 언어가 빚는 생의 시간은 아름답고 처연하다. 거기에 순간적인 익살과 추억이 시의 분위기를 감싸 안으면서 진한 인간미를 낳는다.

뒤란

어머니/ 화덕 위에 소당을 건다/ 들지름을 두르고/ 누르미를 부치는 동안/ 버짐 핀 햇살들 오글오글 모여들어/ 소란을 피운다// 어머니 /화덕 위에 양은 솥을 건다 /애호박을 볶아내고/ 가지를 볶고/ 감자를 쪄낸다/ 마른 아카시아나무 가지가 타닥타닥 탁, /소리를 지르는 저녁// 아버지/ 샘가로 오신다/ 젖은 풀냄새 한 짐/ 꼴지게 속에서 꺼내온 개구리참외/ 한 소쿠리 씻겨지면 어느새 이마 훤한 달덩이가 따라오고/ 여기저기 하나 둘 저녁 굶은 별들이 뒤란에 내려앉는다

‘오글오글 모여드는 햇살’ ‘소리를 지르는 저녁’ ‘저녁 굶은 별들’이란 표현은 빛나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시인은 유년시절 시골의 서정을 그리며, 순수로 가득 찬 동심을 노래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따뜻하다.

<기린>
박연서 지음 / 현대시 펴냄

박연서 시인이 의미를 부여하는 시어들은 다채롭다. 시인은 ‘블랙홀’ ‘벼락’ ‘노을’과 같은 자연적 속성을 지닌 대상물은 물론 ‘미라’ ‘고인돌’ ‘수도원’ ‘산사’에서도 한계를 모르는 자의식을 길어 올린다.

블랙홀

우주의 보석공장이다// 시체 덩어리다/ 부재다/ 죽음으로 배를 불리는 폭식가다/ 우주먼지에 둘러싸인 영혼들의 마지막 집결지/ 납골묘/ 태양 별들의 무덤// 점점 어둠에 삼켜지는 나/ 하지만/ 늙지 않는 나의 고향

빛마저 삼켜버리는 블랙홀은 모든 것들의 무덤이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생명을 잉태하는 삶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사람은 무(無)에서 태어나 무로 돌아간다’는 시적 자아의 명확한 시선이 생멸(生滅)에 대한 경외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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