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천지=송범석 기자] ‘나에게 있어서 최악이란 신앙을 잃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방자는 몽룡의 인간성 상실을 안타까워했다’

세 문장 중 하나라도 어색한 부분을 발견했다면 번역투의 오염을 어느 정도 실감하는 사람이다. 우리말의 많은 부분에 일본어가 섞여있다. 세 번째 문장을 보자. 일본어 격조사 ‘の’에 우리말 관형격조사 ‘의’를 그대로 대입하면 ‘몽룡의’라는 이상한 말이 됐다. 우리말에서는 ‘의’를 생략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다. 가령 ‘우리의 나라’라고 쓰지 않고 ‘우리나라’라고 쓰는 것처럼.

첫 번째 문장에서는 ‘~에 있어서’가 두 번째 문장은 ‘~로서의’가 문제다. 일본어를 번역하면서 우리나라 문법을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직역한 탓이다.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일본어 번역서가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번역의 질은 그 양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질이 좋지 않은 번역은 오역(誤譯)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복되다 보면 오역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저자가 말하는 ‘번역투’란 문맥과 독자층을 고려하지 않고 판에 박은듯한 용어를 사용해 조건반사적으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중국 속담으로 알고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도 사실은 일본에서 영어 속담을 번역한 것으로, 이처럼 어색한 번역투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책은 일본식 구문을 우리 어법에 맞게 바꿔 쓸 수 있도록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특히 일본어 구문 다음에 번역사례를 예시한 뒤 번역투 지적과 함께 대안번역을 싣고 있는 점은 상당히 신선하다. 번역가는 물론, 올바른 국어 생활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오경순 지음 / 이학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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