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역사 바로 세우기’는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펼쳐왔던 핵심 아이콘이었다. 사실과 다르게 왜곡돼 국민과 우리 사회에 잘못 알려진 나라 역사를 바로잡아 제대로 계승·발전시키자는 근본 취지는 좋다.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정권을 잡은 권력층들의 보이지 않는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역사는 조선시대 등 왕조시대의 정사들이 아니라 일제로부터 광복돼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발생한 일들에 대한 과거사이다.        

지금까지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통령이 나서서 강력 주장했는가 하면 집권여당의 힘을 빌려 정략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는데, 가장 공을 많이 들인 대통령은 YS(김영삼 전 대통령 영문이니셜)다. YS는 대통령 직무를 시작하면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역사 바로 세우기의 핵심’이라 판단하고, 중앙청으로 불렸던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지시했다. 3년 4개월의 작업을 거쳐 1996년 12월 12일, 일제 강점기의 잔재물 가운데 대표적 상징이었던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전 철거됐으니 당시에 많은 국민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뒤이어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초창기부터 ‘제2의 건국’을 부르짖었다. 제2의 건국 범추진위원회를 설치해 부정부패 추방 등에 나섰지만 역사 바로 세우기에 관한 정립이 애매해 동력을 잃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보이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는 일제와 독재시대의 유산을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앞세워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구시대의 잔재물을 정리했고, 이명박 정권에서는 역사 바로 세우기에 노력했으나 우리의 과거 잘못된 역사가 산업화시대가 만들어낸 불가항력적이었다는 논리로 소극적으로 추진하다가 유야무야로 종결되고 말았다.   

정권마다 거창하게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웠지만 이 과제는 국민의 힘을 빌려야 순조롭게 진행되고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이었다. 특정 정권의 입맛에 맞춰 ‘과거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정치적 복수를 자행하거나 자기논리에 꿰맞추는 정치 캠페인은 정당성이 없을 터. 그 대표적 사례가 박근혜 정권에서 반발이 심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라 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진행시켰으나 역사학자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마침내 박 대통령 자신이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탄핵되면서 정권이 바뀌게 됐다.  

박근혜 정권이 주도했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은 문재인 정부에서 완전 백지화가 됐고,  또 다시 역사 바로 세우기는 현재 진행 중인데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집권여당에서도 적극적이다. 더불어민주당 간부들이 “우리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건국 기준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김민석 원장 역시 “3.1운동과 임시정부,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역사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바 이런 전제들은 문 대통령이 수차 천명했던 헌법상 대한민국의 법통이 1919년 4월 13일에 수립된 상해임시정부라는 것과 그에 뿌리를 둔 역사의식이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절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왔다. 보수정권이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본 반면, 현 정권에서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헌법 전문(前文)에 근거해 1919년 4월 13일을 건국절로 보고, 내년 건국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련해 이미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민간위원장 한완상 전 부총리)’를 구성했으며, 그동안 보수·진보 세력 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던 건국절에 대한 논란에 마침표를 찍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고히 다질 태세이니 이것이야말로 역사 바로 세우기의 백미(白眉)라 아니할 수 없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국호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자료에 의하면, 1919년 4월 10일 상하이 허름한 셋집에 모여든 29명의 독립운동들이 국호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조선’이나 ‘고려’ 등 여러 이름이 나왔지만 신석우씨가 제안한 대한민국(大韓民國)이 다수결에 의해 결정됐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대한민국이 연혁을 살려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근간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제대로 잇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가오는 4월 13일은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99년째 되는 날이다. 정부에서는 내년 100주년을 앞두고 상하이, 충칭 등지에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등 각종 기념행사를 준비 중에 있다고 하지만 막상 현지에 가보면 시설, 운영 등이 매우 허술하고 보기에도 딱할 정도다. 대한민국의 뿌리요, 법통으로서 우리 모두가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임시정부가 더 이상 방치돼 초라해지지 않도록 정부의 더 세밀한 관심과 국민의 애정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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