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로 옮긴 러시아 취조 기록 공개

(서울=연합뉴스) "공작 및 대장대신은 5~7보를 진행했다. 일본인들이 모인 곳에 못 미쳤을 때 여러 번 총을 발사하는 저음(低音)이 났다. 철도경찰서장 대리 기병대위 니키포르포는 곧바로 돌진했으나, 흉행자의 완력이 강해 그를 진압할 수 없었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당시를 생생하게 묘사한 러시아인 콘스탄틴 밀레르 국경지방재판소 검사의 기록이다.

의거 당시 현장에 있었으며 안 의사에 대한 신문을 담당한 밀레르 검사의 진술서와 사건의 사법권이 러시아에서 일제로 이관된 과정 등이 담긴 '노국(露國)선취조번역문'이 공개됐다.

러시아 당국의 안중근 의사 취조기록을 일본어로 옮긴 문서를 다시 한국어로 옮겨 담았다.

신운용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최근 한국민족운동사학회가 발간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3집에 실린 논문 '안중근의거 관련 노국관헌취조번역문의 내용과 그 의미'에서 체포 직후부터 시작해 1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된 러시아의 안중근 취조기록을 공개했다.

진술서에서 밀레르 검사는 안 의사를 '흉행자'로 지칭하며 "흉행자는 전력을 다해 완강하게 격투를 벌였는데 이는 남은 1발로 자살하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격투 때 권총을 쥔 손을 자기 쪽으로 향하려는 행동을 하였다"며 "흉행자의 7회 발사 시간은 30~40초도 채 못 되었다"고 적었다.

권총을 잡은 자세나 자살시도 여부 등이 후일 안중근이 일제 검사의 신문에 답한 바와 거리가 있지만, 사건 현장을 직접 지켜보고 안중근의 신문을 담당한 밀레르 검사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생생한 현장감이 드러난다.

'노국선취조번역문'은 크게 사법당국의 결정서, 신문조서, 일제에 기록과 안중근을 넘긴다는 통지문, 검사가 받은 보고서, 콘스탄틴 밀레르 국경지방재판소 검사의 진술서 등으로 구성됐다.

기록에는 원래 러시아의 관할 지역이었던 하얼빈에서 일어난 사건의 사법권이 어째서 12시간만에 일본으로 이관됐는지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

국경지방재판소 스트라조프 판사가 작성한 결정서는 안중근의 의거가 러시아 관할인 하얼빈 역에서 일어난 사건임에도 "우치 안(안응칠=안중근)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음을 인정할 증거가 충분하다. 따라서 본건은 러시아 재판에 회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며 "검사의 보관(保管) 아래 이부(移附)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안중근이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사건을 12시간만에 신속히 일제에 넘겼다는 것이다. 만약 일제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재판을 받았으면 사형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선택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 연구원은 "러시아가 한국인 피고를 일제에 넘긴 것은 이보다 2년 앞서 일어난 '한국인의 일본인 살해 사건' 이후 일제가 한국인에 대한 사법권을 침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해당 러시아 기록을 일본어로 옮긴 것으로, 러시아에는 이 취조기록의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