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한라산 중산간에 피신해온 주민들. (출처: 제주4.3사태 진상조사보고서 일본어판) ⓒ천지일보(뉴스천지)
1948년 한라산 중산간에 피신해온 주민들. (출처: 제주4.3사태 진상조사보고서 일본어판) ⓒ천지일보(뉴스천지)

“목사가 죽일지 살릴지 선별”

‘대장’ 교인, 훗날 목사되기도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제주4.3사건과 민간학살, 그리고 여기에 빠질 수 없는 ‘토벌대’가 있다. ‘서북청년회’다. 보수 우익이 정권을 주로 정권을 잡았던 2000년도 이전의 시기에 서북청년회는 공산당을 토벌한 그야말로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제주도에서 벌어진 민간학살에 대하나 진상 조사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상상을 초월하는 희대의 만행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서북청년회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이들은 제주도에서 무슨 짓을 벌였던 것일까. 군과 경찰복을 입고 등장한 서북청년회는 월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민 약탈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잔인한 테러와 방화, 강도, 강간, 절도, 고문, 폭행, 살인 등 학살의 중심에 섰다. 서북청년회의 구성원 중 상당수가 개신교인이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한국교회가 추앙하는 고(故) 한경직 목사는 미군정 시절 민간인 학살의 선봉장이었던 ‘서북청년회(서청)’의 회원이었던 영락교회 청년들의 영적 지도자였다. 한 목사는 자서전인 단행본 ‘한경직 목사’에서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어요.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라고 말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한 목사는 서북청년회가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돼 조직됐다고 언급했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한 목사가 자서전에 밝힌 이 내용은 제주 4.3사건의 진상이 조사되기 전으로, 교인들은 한 목사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주 4.3사건 대 민간학살에 앞장선 서북청년단의 청년이 다녔던 영락교회를 창립한 한경직 목사. 한경직 목사는 자서전에서 영락교회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제주 43.사건)을 평정했다고 증언했다. (출처: 한국기독교흑역사 캡처) ⓒ천지일보(뉴스천지)
제주 4.3사건 대 민간학살에 앞장선 서북청년단의 청년이 다녔던 영락교회를 창립한 한경직 목사. 한경직 목사는 자서전에서 영락교회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제주 43.사건)을 평정했다고 증언했다. (출처: 한국기독교흑역사 캡처) ⓒ천지일보(뉴스천지)
단행본 ‘한경직 목사(1982, 규장문화사, 김병희 편저)’ 55~56페이지에 기록된 한경직 목사의 서북청년회에 대한 회고. 한 목사는 서북청년회가 영락교회 청년회를 중심으로 조직됐다고 고백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단행본 ‘한경직 목사(1982, 규장문화사, 김병희 편저)’ 55~56페이지에 기록된 한경직 목사의 서북청년회에 대한 회고. 한 목사는 서북청년회가 영락교회 청년회를 중심으로 조직됐다고 고백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또 일각에서는 당시 목회자들이 민간학살의 배후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를 갖고 당시 역사적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보수 개신교인들은 미국에 대항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선봉장이 됐다고 강조하며 제주 4.3사건, 신천학살 등을 언급했다. 한 교수는 “교회 청년들로 구성된 서북청년단은 제주도 빨갱이라며 사람들을 죽였다”며 “안타까운 게 민간인 학살에서 반드시 있는 게 선별 절차가 있었는데, 손가락질을 해서 죽이는 쪽 살리는 쪽을 선별했다. 그 역할을 목사님들이 직접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그런가 하면 초기 서북청년회의 테러를 주도했다가 목사가 된 인물도 있었다. ‘한국기독교흑역사(강성호 저)’에 따르면 초기 서북청년회가 조직한 남선파견대 대장을 맡으며 백색테러를 주도했던 ‘임일’은 훗날 신학교를 졸업해 목사가 됐다. 한성일보와 중앙경제통신 등에서 기자로 활동을 했던 임일은 이북의 실청을 폭로하는 글을 써 마치 서북청년회가 ‘진실의 전파자’인 것처럼 국민들에게 이미지를 심어줬다. 그는 목사가 된 이후에도 반공활동에 앞장섰다. 저자 강성호는 그에 대해 “자신이 저지른 폭력과 테러에 대한 죄책고백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황에도 한국교회가 서북청년단의 만행을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은 없다. 다만 최근 개신교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제주4.3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고 개신교가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신교 진보진영 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달 말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사건 현장을 답사하고 추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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