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정말 깜짝 놀랄 일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격적으로 만난 것이다. 그것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예약해 놓은 상태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부인과 함께 먼저 중국을 찾았다. 물론 그간의 과정은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됐다. 특별열차가 국경을 지나 베이징으로 향하고 있을 때도 그 열차에 누가 탑승하고 있는지 잘 모를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한미관계와 마찬가지로 북중관계도 ‘혈맹관계’이다.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한목소리로 ‘혈맹’을 말한 것도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북한과 중국, 다시 혈맹을 말하다

김정은 시대 북중관계는 역대 최악의 관계가 지속됐다. 유엔의 잇단 대북제재에 중국이 적극 동참하자 북한은 보란 듯이 핵실험을 계속했으며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여차하면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럴수록 북한은 더 고립됐으며 중국과의 거리도 더욱 멀어져 갔다. 과연 이 긴장의 끝이 어떻게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해 왔다. 지난해 북미 간에 ‘말 폭탄’이 쏟아질 때는 전쟁의 위협까지 거론될 정도였다.

그러나 평창의 축제가 평화의 축제로 이어지는 것일까.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물꼬가 트이더니 북미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작품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목소리가 잠시 뜸하다 싶더니 북중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게다가 그 형식과 내용도 놀랍다. 김정은 위원장을 맞는 중국의 환대는 최고의 국빈급 예우였다. 청나라 황제들의 별장이었던 양원재(養源齋)에서의 오찬은 그 상징이 아닐까 싶다. 이곳은 1987년 5월 덩샤오핑과 김일성이 만찬을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혈맹’을 말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맞는 시진핑 주석의 의지가 잘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에 김정은 위원장도 적극적인 화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신화통신이 28일 전한 소식을 보면 김 위원장은 “남한과 미국이 우리 노력에 선의로 응하고, 평화 실현을 위한 계단성(progressive), 동보적(synchronous) 조치로 평화와 안정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비핵화는 ‘점진성’과 ‘동시성’을 원칙으로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 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의 일관된 발언이다. 미국이 의도하고 있는 ‘리비아식 해법’, 즉 선(先) 핵포기 후(後) 보상의 방식은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담스런 결단을 요구한 모양새다. 비핵화 원칙에 더해서 이를 풀어가는 방식까지 시진핑 주석과 합의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외교적 방식으로 전격 수용하거나 반대로 비핵화의 진성성이 없다며 판을 엎을 수도 있다. 물론 제3의 절충안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북한과 중국이 다시 혈맹을 강조하며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이제는 미국이 기존의 대북 압박전략만 고수하기엔 명분과 실리 모두에서 녹록치 않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응 방식이 이번에는 바뀔 것인지, 아니면 다시 그대로 갈 것인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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