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일개 무뢰배에 불과했던 주온(朱溫)은 황소(黃巢)의 농민군에 가담했다가 조정에 투항했으며, 거꾸로 황소의 군대와 각지의 번진을 진압하면서 세력을 강화했다. 위로는 조정을 장악하고 아래로는 번진을 압박해 당말에 가장 막강한 실력자로 부상한 그는 소종을 낙양으로 옮긴 후 황제를 노리개로 삼아 천하의 제후들을 호령했다. 그러한 그가 갑자기 소종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첫째, 세력은 잃었지만 천자 소종은 공식적인 최고 권력자였다. 그의 정적인 이극용(李克用)이나 이무정(李茂貞) 등 군벌들은 모두 소종을 받들어 당을 부흥시킨다는 기치를 들고 나왔다. 소종이 그들을 지지한다면 자신은 하루아침에 반역자로 변한다. 게다가 소종 이엽은 파란만장한 정치적 사건을 겪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대였다. 둘째, 반주(反朱)의 기치를 든 이극용과 이무정 등은 자신이 직접 상대하지 않을 수 없는 강적이었다. 게다가 낙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 직접 소종을 상대해 보았던 주온은 그가 허수아비 노릇에 만족할 군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종이 천자의 권위를 앞세워 조정 신하들과 결탁하고 외부의 원조를 받는다면 배후에서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약화됐지만 당왕조가 여전히 상당한 호소력을 지녔기 때문에 번진들이 소종을 황제로 인정하며 소중하게 받들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한 소종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피살됐다면 야심을 품은 번진들이 그것을 이유로 연합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낙양으로 천도한 후 재빨리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가면서 낙양에 남긴 주우공에게 넌지시 황제를 암살하라고 지시했다. 자신은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피살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발뺌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오리발로 여론의 비난을 감당하지 못하자 국정의 책임자로서 철저히 책임자를 문책해 천하의 여론에 순응한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고심하던 그는 결국 황제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숙위(宿衛)였던 양자 주우공과 지숙종을 속죄양으로 삼아 설득력을 극대화하기로 결심했다. 

두 번째 원인은 보다 직접적이었다. 당시 주온은 황하 유역 대부분을 장악했다. 그러나 번진 가운데 이극용과 이무정 등은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이름뿐이지만 당황실은 자신의 세력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했다. 황실이 그들을 지지한다면 주온은 갑자기 반역자로 몰려 궁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피살된 상황에서 속죄양을 내던지지 않는다면 천하의 이목을 가릴 수 없게 된다. 강적들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당황실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13세에 불과했던 이축을 허수아비 황제로 옹립했다. 권력을 장악한 그는 이가의 강산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칭제를 위한 길을 닦아나갔다. 이축은 주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했다. 그는 어린 황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밖으로는 이극용 등 번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안으로는 소종의 아들 9명을 낙양으로 불러서 모두 살해했다. 당을 지탱하던 재상 배추(裵樞) 등의 귀족과 과거출신자 가운데 반대파 100여명도 차례로 살해했다. 당왕조는 이름만 남은 껍데기가 되고 말았다. 어린 소선제는 살기 위해 주온에게 제위를 선양했다. 세계 최고의 제국이었던 대당제국은 이름마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역사에서 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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