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집

임재춘(1954~  )
 

고목나무 샘을 돌아온 바람이
빨래집게 하나 덜렁거리는
빈집 마당을 들여다본다
작은 산새 발자국이 혼자 놀고
눈물이 빛바랜 벽에 얼룩으로 남아있는 집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방황의 그림자가
문득 고향 쪽을 향해 멈춘다
뜰 안 능소화 한 줄기
붉은 노을 뚝뚝 떨구며 늘어진다.
잠시 머물던 초승달, 희미한 꼬리를 감추면
반딧불이 환하게 불을 밝힌다.

 

[시평]

우리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옛집, 옛 마을은 마치 잠시 머물던 초승달, 그 희미한 달빛에 비추듯이,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그와 같이 아련하고 또 정겨운 곳이다. 그래서 늘 반짝거리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마냥, 우리에게 반짝하고 밝은 그 빛을 순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다.

빨래집게 하나 혼자 덜렁거리고, 작은 산새 발자국이 혼자 놀고, 눈물이 빛바랜 벽에 얼룩으로 남아있는 집.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또 아무리 많은 세월 속을 힘들게 살아왔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그 그림들. 이가 바로 우리 어린 시절을 담고 있는 우리의 고향 옛집이 아니겠는가.

요즘 세상은 어쩌면 고향이 없는 세대인지도 모른다. 집이 주거의 공간이지만, 또 재산을 불리는 대상이 되기 때문에, 자주 자주 집을 팔고 사고, 그래서 자주 이사를 해야 하고, 또 대부분이 일일권(一日圈)으로 바뀌어 전국이 좁다고 나다닐 수 있으니, 그래서 어디 한군데 정착하고 사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고향이 없는 세대. 고향을 잃은 세대. 그래서 그 마음의 한 구석의 중요함을 잃어버린 세대. 어쩌면 오늘이라는 현대의 또 다른 슬픔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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