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마데우스’ 한지상. (제공: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9
연극 ‘아마데우스’ 한지상. (제공: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9

연극 ‘아마데우스’서 ‘살리에리’ 역 맡아

만년 2등이던 학창시절 일화 최초 공개

연출에 없던 자신만의 애드리브도 밝혀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2003년 연극 ‘세발자전거’로 데뷔한 배우 한지상은 16년간 쉬지 않고 연극·뮤지컬·방송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한지상은 열정적인 표현력과 에너지 덕에 ‘평범하지 않은 배우’로 관객의 마음에 각인됐다. 그런 그가 지금 평범한 사람들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살리에리’로 분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한지상이 출연 중인 연극 ‘아마데우스’는 일평생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질투한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모차르트 역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 한지상은 “내가 보는 나는 살리에리”라고 강조한다. 그는 항상 2등만 하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연극 아마데우스 속 대사를 변형시켜 나지막이 읊조리기도 했다.

“1등인 그의 교과서는 너무나도 깨끗했어요. 수정된 곳 하나 없이 깨끗했죠.”

천지일보는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배우 한지상을 만나 떡잎부터 살리에리였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한지상과의 일문일답.

연극 ‘아마데우스’ 한지상. (제공: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9
연극 ‘아마데우스’ 한지상. (제공: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9

-살리에리를 연기하게 된 소감은 어떤가. 그리고 연기하면서 본인과 살리에리의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나.

살리에리 역이 주어졌을 때 정말 감사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유년·학창시절을 보냈다. 누구보다 평범했고, 일탈할 생각을 못 했던 청소년이었다.

평범 이하라고 느낀 적도 있다. 대입을 위해 삼수까지 했는데,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다. 삼수 때가 2002 한일 월드컵 시즌이었는데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월드컵 경기를 다 챙겨보고 거기에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때의 마음과 정서를 잊지 못하고 있다.

-모차르트 역도 어울렸을 것 같은데.

이번에 살리에리를 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너는 모차르트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동안 맡은 배역이 많이 독특하거나 판타지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내가 바라보는 나가 중요했다. 나는 살리에리였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연극 ‘아마데우스’ 프레스콜 공연 하이라이트 시연 장면.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9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연극 ‘아마데우스’ 프레스콜 공연 하이라이트 시연 장면.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9

-살리에리는 부와 궁정 음악장이라는 명예를 가진 사람이다. 마냥 평범하기만 한 인물은 아닌데 살리에리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나.

과거로 돌아갔다. 이건 처음으로 하는 말인데, 중학생 때 반에서 2등을 되게 많이 했다. 반 1등인 친구가 전교에서 1등인 학생이었다. 그 친구 이름이 대학농구 유명스타인 서장훈씨와 똑같아서 아직도 기억난다.

장훈이는 대표 선서하고 학교에 입학할 만큼 계속 1등인 친구였는데, 중간·기말고사 때 보면 나랑 평균 차이가 1점도 안 났다.

그 친구는 머릿속으로 핵심을 파악하고 그것만 교과서에 적었다. 반면 나는 선생님 말씀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이 잡듯이 필기했다. 나는 진짜 노력파였다. 그런데 항상 평균 영점 몇 차이로 그 애는 1등이고 나는 2등이었다. 그래서 나와 살리에리의 정서가 아주 비슷하다고 느꼈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연극 ‘아마데우스’ 프레스콜 공연 하이라이트 시연 장면.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9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연극 ‘아마데우스’ 프레스콜 공연 하이라이트 시연 장면.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9

-여느 학생과 마찬가지로 공부 열심히 하면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다. 그래서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배우라는 직업이 평범하지는 않지 않나.

이것도 서장훈이라는 친구와 관계가 깊다. 내 생에 장훈이를 이기고 1등을 할 뻔한 적이 있었다. 장훈이와 나의 전 과목 총점 차이가 8점이었던 시험 때의 얘기다. 그때 기술시험에서 순간적으로 헷갈려서 똑같은 개념의 문제 3개를 틀렸다. 하나당 3점짜리였다. 그것만 안 헷갈렸어도 총점 1점 차이로 내가 1등이었던 거다. 이걸 알게 된 후 많이 좌절했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 만약 그때 장훈이를 이겼다면 자신감이 붙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을 거고 가려던 외고에 진학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러면 아마 지금 배우를 안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내 안에 평범함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자아붕괴가 왔다. 그렇다고 대놓고 독특해질 용기는 없어서 내 평범하지 않음을 글 혹은 이론으로 펼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3 현역 때는 연출학과를, 재수 때는 국문과를 지원했다. 연출학과·국문과 모두 다 떨어지고 나서 삼수 때는 연기 전공으로 입학한 다음에 전과할 생각으로 실기를 준비했다. 합격 후 연기를 하다 보니까 ‘연출은 조금 더 나중에 하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극 연기에 심취했다. 정말 즐겁게 임했다.

-다시 작품 얘기로 돌아와서 질문하겠다. 작품이 살리에리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대사가 엄청 많다. 어떻게 소화하고 있나.

이번 공연의 연출인 이지나 연출이 내 대학 시절 교수님이다. 그때 교수님이 진행하던 수업의 교재(대본)를 다 외워야 했는데 대사 분량이 살리에리와 버금간다. 그래서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리고 만년 2등만 했던 학창 시절에도 암기과목은 자신 있었다(웃음).

연극 ‘아마데우스’ 대사. (제공: 페이지1)
연극 ‘아마데우스’ 대사. (제공: 페이지1)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

“당신의 평범함을 저는 용서합니다”다. 원래 대사는 “당신을 용서합니다”였다. 영화에서도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나온다. 중간에 평범함을 넣은 건 애드리브다. 연습 때와 첫공 때는 원래대로 했는데 그냥 용서한다고 하면 듣는 사람들이 ‘나는 괜찮아’ 할까 봐 평범함을 용서한다고 하고 싶더라.

자신이 너무 평범하다고 느끼는 분 중 ‘나는 신의 조롱을 받고 있다’ ‘나는 신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분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 분들에게 ‘신의 용서를 받지 못한 당신의 평범함을 죽음조차 평범한 나, 살리에리는 용서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애드리브에 대해 나와서 말인데, 극 중 요제프 황제가 살리에리에게 “말에 가시가 돋았어”라는 대사를 하면 한지상 배우는 손으로 가시를 뽑는 동작을 한다. 프레스콜 때 다른 배우가 그 장면을 시연했는데, 가시 뽑는 시늉은 안 하더라. 이것도 애드리브인가.

그렇다. 그건 나만의 애드리브다.

내가 연기하는 살리에리는 요제프 2세를 아주 열정적으로 소개한다. 왜 그러냐 하면 천성적으로 나 같이 보수적인 사람은 윗선에 아부해야 한다. 속은 2인자이지만 겉으로 보기에 최고로 잘 나가는 음악가였던 살리에리도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황제를 더 우렁차게 소개하고, 그가 가시 돋친 말이라고 할 때 “뺄게요”라면서 장난치는 부분은 그만큼 황제와 친하다는 걸 드러내려는 살리에리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최고 권위자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모습은 18세기로서는 당연한 모습 같았다.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되나.

우선은 연극 ‘아마데우스’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일을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에 여행을 가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조금 더 창의적으로 사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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