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닥터지바고’ 전미도. (제공: 오디컴퍼니)
뮤지컬 ‘닥터지바고’ 전미도. (제공: 오디컴퍼니)

원작 보지 못한 관객에게 관람 팁 전해

스스로 작품 속 라라만큼 솔직하다 밝혀

공연 이후 차기작 언급… 리딩 공연 참여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지난 2012년 이후 6년 만에 뮤지컬 ‘닥터지바고’의 한국 재연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관객들은 “드디어”를 외치며 공연 오픈 날짜를 기다렸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지향하며 일어난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은 의사이자 시인으로서 격변의 시기를 살아가는 ‘유리 지바고(유리)’와 그가 운명적으로 이끌린 여인 ‘라라’의 로맨스를 그린다.

재연 소식 후 무엇보다 관객의 관심을 끈 것은 유리와 라라 배역에 어떤 배우가 참여하는 지였다. 이번 공연에서 유리 역에는 배우 류정환과 박은태가, 라라 역에는 배우 조정은과 전미도가 캐스팅됐다.

그중 눈길을 끄는 배우는 바로 전미도였다. 그는 6년 전 한국 초연 당시 이미 라라로 분한 바 있다. 또 지난해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깜찍한 헬퍼봇 ‘클레어’로 분하면서 새로운 팬층을 형성한 전미도였기에 초연을 접한 관객은 물론 보지 못한 관객도 그가 연기할 라라를 향한 관심을 감추지 않았다.

6년 만에 라라로 돌아온 배우 전미도를 최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VIP실에서 만나 뮤지컬 ‘닥터지바고’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뮤지컬 ‘닥터지바고’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8
뮤지컬 ‘닥터지바고’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8

“작품에는 유리와 라라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계기라는 게 없어요. 원작 소설에서도 유리가 일방적으로 라라에게 마음을 주고 있음을 표현하죠.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두 사람의 사랑이 불륜이지만, 작가가 단순히 그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고민·번뇌·갈등 등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뮤지컬은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파스테르나크는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작품 내용상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에 반대한다는 의혹과 함께 소련 작가 동맹에서 제명되는 등 정치적 압박에 시달리다가 수상을 거부했다.

문학적으로 작품 속 라라는 러시아를 상징한다. 역사적으로 40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고, 이후 짜르(동유럽에서 황제를 부른 호칭)의 독재정권 아래에 있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러시아의 모습이 라라에 투영됐다. 전미도는 원작을 보지 못하고 극을 접한 관객에게 “라라의 상징성을 알지 못하면 그의 삶을 이해하기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등장인물을 이해하려면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라라는 어머니의 정부(情夫)인 ‘코마로프스키’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죄책감을 가져요. 그리고 ‘파샤’와 결혼한 후 첫날밤에 모든 사실을 털어놓죠. 얘기를 들은 파샤는 라라를 두고 집을 나가지만, 라라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나서고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요. 그런 것만 봐도 라라는 행동하고 움직이는 사람임을 알 수 있죠.”

뮤지컬 ‘닥터지바고’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8
뮤지컬 ‘닥터지바고’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8

전미도는 뮤지컬 프레스콜 당시 라라에 대해 등장인물 중 가장 자신에게 솔직한 인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역할을 맡은 배우 자신도 솔직한 사람인지 묻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그는 “어릴 때는 내가 착하고 모든 걸 이해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며 “그런데 커서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시기·질투를 느끼거나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인지하게 됐다. 누군가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할 때도 ‘나 또 험담하고 있네’라는 자의식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좋은 사람인 척하지 않기로 했고, 내가 느끼는 나쁜 감정들에 대해서도 ‘나도 사람이니 그럴 수 있지’라고 유연하게 넘기게 됐다”며 “여러 감정을 가진 라라를 더 이해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닥터지바고’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8
뮤지컬 ‘닥터지바고’ 공연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8

이제는 이름 석 자가 브랜드인 전미도지만 연기를 항상 쉽게 한 건 아니다. 서른 살이 돼 가는데 어린 역할만 들어와 고민한 바 있고,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해 선배들에게 혼난 경험도 많다. 그러나 그는 “내 안의 알을 깨주는 작품을 한 후로 성취감을 느끼고 진취적인 성향이 됐다”고 고백했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메피스토’가 제 알을 깨줬죠. 아그네스는 극단적으로 순수하고 극단적으로 선한 인물이에요. 반대로 메피스토는 절대 악인 인물이죠. 저는 반반 섞인 사람인데 두 인물이 가진 의식의 흐름과 에너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울면서 어떻게든 하려 했어요. 상반된 두 역할을 하고 돌아보니 제가 제 안의 알을 깼다는 걸 깨닫게 됐죠.”

일에 있어서만큼은 진취적인 스타일이라는 그는 ‘닥터지바고’ 이후 뮤지컬 리딩공연 2개에 참여할 예정이다. 리딩공연은 정식 공연을 앞두고 작품을 리딩 형식으로 선보인 후 관객들의 반응과 피드백을 받는 형식의 공연이다.

전미도는 리딩공연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기존 공연의 배역은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게 있어서 이미지를 깨기 어렵다고 느꼈다”며 “그래서인지 아직 개발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리딩공연을 좋아한다. 정식 공연으로 무대에 오르면 성취감과 내 작품인 것 같은 애정도 더 생긴다”고 밝혔다.

“저는 좋은 역할을 너무 많이 했어요. 여자 배우들이 하고 싶다는 역할을 많이 했죠. 특정 작품의 특정 인물을 하고 싶다 말하고 싶지 않아요. 사실 그동안 안 해본 다양한 역할을 다 해보고 싶은 게 솔직한 저의 욕망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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