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줄곧 연계된 문재인 정부의 외교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4월 초 평양공연,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5월 중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잭팟’을 연이어 터뜨리며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사상 초유의 미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를 서로 드높이고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사전 축하행사로 평양에서 남한 예술단 공연이 펼쳐진다. 남한 예술인들의 북한 공연은 2005년 조용필의 평양 공연 이후 13년 만이다. 예술단에는 조용필을 비롯해 이선희, 최진희, 윤도현, 백지영, 걸그룹 레드벨벳 등이 포함돼 있다. 조용필, 이선희, 최진희, 윤도현은 이미 평양 공연 경험이 있다. 이미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새터민의 입을 통해서도 북한 내에서도 북한 인민들이 남한 대중가요를 몰래몰래 듣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 청년들은 대체로 아이돌 그룹의 노래보다는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김범수의 ‘보고 싶다’, 거북이의 ‘빙고’, 이선희의 ‘인연’ 등 한국을 강타했던 대중가요들을 선호한다. 탈북해서 한국에서 거주하는 한 남성 새터민은 북한 젊은이들은 빠르고 강한 아이돌 댄스곡보다 밝고 서정적인 노래들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방탄소년단,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듣거나 뮤직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한예술단이 북한정권의 입맛에 맞는 노래를 할 것이 아니라, 북한 인민들에게 공감하고 화합할 수 있는 메시지와 시너지를 제공해야 하며, 남북 간의 문화적 이질성을 해소하도록 노력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치보다 음악으로 물꼬를 트는 역사적 의미를 새겨야한다.

남측이 가수 싸이를 추가로 예술단 공연에 합류시키려 노력하고 북한은 난색을 표한다는 엇갈린 의견도 난센스다. 평양에서 열리는 제대로 된 남측을 대표하는 공연이라면, K-Pop을 이끌고 있는 싸이가 공연하고 대중가요 문화를 내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인민들을 억압하고 감시하는 북한정권이 자신들의 정치적 색깔과 이데올로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싸이의 공연을 반대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북한의 젊은이들은 발각될 위험이 적은 MP3, USB, SD카드 등을 사용하면서 여전히 남한 노래를 즐겨 듣고 있다. 북한에서 한국 노래를 듣다가 보위부에 발각되면 수용소에 수감되거나 심한 경우 무기징역에 처하기도 한다. 남성 새터민은 최근 남한 문화의 유입이 많아지자 단속이 강화됐고 이후부터 남한 노래를 매우 조심해서 들었다고 전했다. 북한청년들은 보위부의 단속과 발각을 두려워하지만, 자제하기 힘든 한국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한국 대중가요 듣기를 멈추는 것이 더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가운데, 대한민국 최고의 프리스타일 노래와 춤을 추구하는 싸이의 노래는 북한 젊은이들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북한 정권은 조심스러워하고 사회주의 철학을 늘어놓으며 공연을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전 세계인들을 강타한 ‘강남스타일’의 중독되는 빠른 비트와 여운, 코믹한 말춤과 B급 감성, 싸이의 폭발적인 무대 장악력이 실현된다면 객석에서 서로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북한 관객들의 이미지가 벌써부터 그려진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남한의 ‘맞짱’이나 미국의 간섭이 아니다. 북한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세뇌되고 죽어있는 북한 젊은이들의 생각과 사상이 변화되는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의 유입을 차단하는 방법밖엔 없다. 특히 한국노래, 드라마, 영화 등이다.

올해 초부터 경제든 무역이든 생존과 공생을 외치며 남한과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보기를 희망하는 김정은의 꼼수도 이번 평양공연에 깔려있다. 위험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세하지만 부분적으로 문화적 교류를 허용하는 그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구소련과 중국, 베트남도 정권유지와 생존을 위해 개방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 한참 멀어 보인다.

K-pop을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며 배격하는 북한의 행태는 변화시키기 어렵다. 이미 북한방송에서 북한 음악평론가들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며, “북한청년들의 건전한 사상의식을 좀먹고 마비시키는 야비하고 야생적이고 광란적”이라고 비판했다. 김정은 역시 올해 신년사에서 “혁명적인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힘으로 부르주아 반동문화를 짓눌려 버려야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사회주의를 좀먹는 사상요소를 뿌리 뽑자며 연일 사상전을 강조하는 북한이지만, 저녁에는 집에서 이불 쓰고 한국 음악을 즐겨듣는 북한 젊은이들의 문화적 감성과 욕망의 표출은 잠재우기 쉽지 않을 것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북한 젊은이들을 지배해 왔던 사회문화적 제약과 무의식은 이번 남측예술단의 공연을 통해 부흥이 필요해보이며 싸이의 노래는 그들의 욕망을 꿰뚫어 줄 척도가 될 수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