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년간 제자리 지킨 ‘서산 명종대왕 태실’ 보물 지정
480년간 제자리 지킨 ‘서산 명종대왕 태실’ 보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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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 전경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7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 전경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7

“주변 지형 등 자연 잘 보존”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76호로 지정됐다.

26일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에 따르면, 조선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그 태(胎)를 태항아리에 봉안하고 태실을 조성했다.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조선 13대 왕 명종이 태어나던 1538년(중종 33년)에 의례에 따라 건립됐다. 태를 봉안한 태실과 ‘대군춘령아기씨태실비’ 1기가 먼저 건립되고, 명종이 즉위한 후 1546년 ‘주상전하태실비’ 1기를, 1711년 ‘주상전하태실비’를 재건하면서 비석 1기를 추가로 건립해 현재 총 태실 1기와 비 3기가 전한다.

태실은 8각형의 난간석 중앙에 배치됐다. 태실의 머릿돌은 8각의 개첨석(盖簷石: 조선 시대 태실 위에 지붕 모양으로 만들어 덮어씌우던 돌), 받침돌은 사방석(四方石)이고 몸돌은 중동석(사각으로 이뤄진 하대석 위에 올린 동그란 돌로 태실 조성 시 사용됨)으로 구분된다.

태실에 봉안됐던 태항아리와 지석(誌石: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무덤의 소재를 기록해 묻은 돌이나 도판)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경 일제에 의해 경기도 고양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겨졌다가, 이후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해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보관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조선 왕실의 많은 태실이 본래의 자리에서 옮겨졌거나, 변형된 경우가 상당한 데 비해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조선왕조실록 등에 관련 기록이 상세히 전해지고 있다”며 “원래의 자리에 온전하게 남아 있으면서 주변 지형 등 환경까지도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태실과 가봉태실, 가봉개수태실의 변천 과정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고 조선 왕실의 안태(安胎:왕가의 태를 명당에 설치한 태실에 편안하게 봉안하는 격식과 절차) 의례의 역사적 자료이자 한국미술사의 태실 연구 자료로서도 그 가치가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관련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가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될 수 있도록 주변 시설 등을 적극적으로 정비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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