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 고봉준 평론집 / 천년의시작 펴냄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문학평론가 고봉준의 평론 모음이다. 저자는 작금을 ‘유령의 시대’라고 칭한다. 그가 말하는 유령의 존재는 두 부류다. 하나는 이미 죽었지만 충분히 죽지 못해 살아 돌아온 유령, 또 다른 존재는 살아 있으나 시체로 취급되는 유령이다. 저자가 말하는 유령은 후자다.

현재에 속하지만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그 존재감을 부정당하는 것들. 그들은 무기력한가? 그렇지 않다. 유령은 쉴 새 없이 떠든다. 그리고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다. 곧 ‘유령의 언어’다.

유령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가난에 내몰려 폐기처분된 인생을 강요당하는 이웃, 남성성에 짓밟혀 무너져내려가는 여성, 막다른 길에 다다른 문학. 이들이 바로 유령이다.

책은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정치와 문학의 관계성을 조명한다. 문학이 그저 텍스트로만 존재해야 하는지, 아니면 사회적 수행성을 내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뇌가 주를 이룬다. 2부에는 10여 명의 시인의 작품에 대한 비평이 실렸다. 저자는 여기서 유령들의 정체성을 파헤친다. 3부에서는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시인들의 시를 대상으로 쓴 주제론을, 4부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지 않은 비평과 메타비평(논리적 원리 따위를 주제로 삼는 비평 방법)을 묶었다.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 이수익 시집 / 시학 펴냄

<우울한 샹송>으로 우체국을 들르는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이수익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다.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지만 시인의 시구는 전혀 퇴색되지 않고 지난 세월을 바라보며 자아내는 우수 어린 아름다움은 깊음을 더해간다.

여항산

내 안에 평생 여항산 있다 / 770미터 그 산 울창한 숲, 수정처럼 맑은 / 계곡물, 시원한 바람 소리 있다 / 꽃며느리밥풀, 은미타리, 구렁내덩쿨, 취오동 / 피고 지는 피고 지는 야생화 있다 // 고향을 떠나온 지 이미 오랜 / 세월 / 지났어도 / 나는 한 번도 날 낳은 여항산 품을 / 잊은 적 없다 / 그리로 흐르던 산골물이 내 핏줄 되었고 / 그리로 흐르던 깨끗한 공기가 나의 폐를 / 키웠으므로 // 경남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 274번지, / 눈감기까지 버릴 수 없도록 푸르고 / 질긴 인연을 내게 준 고향은 // 영원한 내 영혼의 지번(地番) / 또 하나 내 몸의 유적, 그것은 / 오늘의 나를 이끄는 오래된 힘이 되었으므로 // 어서 가자, 가자 / 숨죽여 부르는 피의 노래를

경남 함안 출신인 시인은 고향의 새벽이슬을 감각한다. 늘 자신을 지탱해준 찬란한 고향의 숨결을 세속의 고통을 감내한 자의 목소리로 승화한다. 그리하여 고향은 또 다시 열망의 피가 되고, 삶을 통찰하는 원초적 에너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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