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시대’의 좌표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얘기다. 정부형태 등 부분적 논란만 제외한다면 개헌안 내용은 사실 매우 바람직한 내용이다. 민주화의 역사를 더 풍성하게 기술한 개헌안 전문(前文)부터 기본권 문제, 지방분권과 경제민주화 그리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문제까지 딱히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신선하다. ‘87년 체제’를 30여년 만에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국가운영의 좌표로서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촛불민심’에 대한 화답으로서도 기대 이상이다.

비전은 좋으나 현실은 암울하다 

대통령 개헌안 가운데서도 특히 ‘지방분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한국의 지방정부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비전을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개헌안을 보면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지방자치단체의 집행기관을 ‘지방행정부’로 명칭을 바꾸는 문제를 비롯해 자치행정권과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리고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소환제를 헌법에도 명시했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측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끌고 가는 방식은 이미 옛날 얘기처럼 돼버렸다. 각 지역의 특성과 역량에 맞게 자율적으로 지방정부를 이끌어 갈 때 국가의 경쟁력이 더 높아지는 법이다. 게다가 주민자치를 실현할 제도적 장치까지 헌법에 규정한다는 것은 지방분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내용으로 본다면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먼저 이런 내용의 개헌안이 현실적으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단순한 국회 의석 분포만이 아니다. 대통령이 발의하는 방식이 되면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대의 ‘정치 쟁점’으로 부각돼 버렸다. 특히 야당이 받을 수 없는 내용을 포함시킴으로써 야당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게다가 이를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흘에 걸쳐 그 개요만 설명하는 방식도 낯설다. 법무부 장관이 개헌안 전체를 밝히고 설명하는 것이 옳았다. 심지어 개헌안 발의의 시점까지 잡아 놓은 상태다. 국회에서 부결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코 발의하겠다는 것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좀 더 현실적인 상황을 보자. 지방정부의 역량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지방의회를 통해 수렴되고 조율되면서 각 부문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지방정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그 상징격인 ‘4인 선거구제’가 권장되고 있다. 지방정치마저 특정 정당의 독과점으로 가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 지역에서 ‘4인 선거구’가 속속 폐지되고 있다. 벌써 수십년 동안 양당 독점체제가 뿌리내려 있긴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를 줄 알았다. 아니 자유한국당이 먼저 치고 나와도 지금의 민주당은 좀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역시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지방분권을 말하는가.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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