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18일 21년 만에 한국여자마라톤 신기록을 세운 김도연(25)이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운동만 하는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운동과 인생에 대해 밝힌 기사를 읽어 내리는 순간, 일본의 대표적인 국민작가이며 마라토너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연상됐다. 그녀와 하루키가 마라톤을 대하는 화법이 아주 비슷하기 때문이다. 2016년 출간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하루키는 극한의 체력과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100㎞ 울트라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면서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며 앞만 보고 달려 끝내 완주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달리기를 통해 분투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준 것이다. 

하루키는 자전적 에세이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2016년 출간)에서 29살 때인 1978년 처음으로 소설을 쓰는 구상을 하게 된 게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히로시마 카프와의 경기를 도쿄 진구구장에서 보던 중, 외국인 선수였던 데이브 힐튼 선수가 2루타를 치는 순간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긴 호흡과 체력이 뒷받침돼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마라톤을 시작했다. 이제는 마라톤이 그의 삶의 일부분이 됐다. 소설을 쓰기 위해 서울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는 여러 도시를 달렸다. 달리기는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일상인 것이다. 

김도연이 하루키의 글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마라톤을 생각하는 그녀의 가슴에는 아마도 하루키와 감성이 통하는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달리면서 정말 힘들 때 나는 운동만 하는 기계인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참았고 결국 해내서 행복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김도연은 오랜만에 여자마라톤 한국신기록을 달성하면서 새 봄을 맞아 한국마라톤에 새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한국마라톤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1936년 베를린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1948년 보스톤 마라톤 우승자 서윤복 등의 세계 제패 이후 장기간 침체국면을 보였다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우승자 황영조, 1996 애틀랜타올림픽 준우승자 이봉주의 등장 이후 다시 부활하는 듯했었다. 하지만 남자마라톤의 경우 2시간 10분대 선수가 현재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국제경쟁력을 크게 상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도연은 신데렐라처럼 여자마라톤 기대주로 떠오른 것이다.

마라톤 전문가들은 김도연이 최근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한국신기록 수립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지난해 7월 일본에서 5천m 한국신기록을 작성한 뒤 지난 2월 하프마라톤에서도 한국신기록을 세운 그녀는 지난주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25분 41초로 국내 여자부 우승을 하면서 권은주가 보유한 종전 기록 2시간 26분 12초를 21년 만에 갈아 치웠다. 그녀는 “한국최고기록을 세웠다고 해서 인생이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 내가 가는 길에서 하나의 목표를 이뤘을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갈 길을 갈 것이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번 한국신기록으로 2018년 자카르타 여자마라톤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2020년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에도 출전할 계획이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 기계처럼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을 인생의 모토로 갖고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김도연도 세계 여자마라톤에서 정상에 서기까지 계속 질주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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