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들꽃 하나

박두규(1956~  )

 

길가의 먼지 뒤집어 쓴 들꽃 하나
오가는 사람의 일상 밖으로 피었어도
너는 분명 한 송이 꽃이다.
세속의 슬픔이야 슬픔으로 놓아둔들 어떠랴.
햇살 좋던 세월도, 모진 비바람의 세월도
다 너를 꽃피운 세월이거니
켜켜이 쌓인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놓아둔들 어떠랴.
모두가 가고 없는 길가
오가던 사람들 두고 간 마음 하나 없어도
소리 없이 내려온 달빛 하나로 
너는 충분히 눈부시다.
 

[시평]

엄동의 겨울이 어느덧 풀리고 봄이 찾아왔다. 계절의 순환이란 이렇듯 참으로 신비하다. 어떻게 그 추운 겨울이 저절로 물러갈 수 있을까. 결코 물러가지 않을 듯한 자세로 온통 세상을 얼음의 왕국으로 만들었던 겨울이 저절로 풀려, 봄이 우리의 곁으로 찾아와 따듯한 햇살을 보내고 있으니, 이가 바로 천리(天理)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봄을 맞은 만물들은 이제 막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마당 한 구석에서는 흙을 밀어내고는 작디작은 새싹들이 솟아오른다. 가냘픈 작디작은 풀잎이 도대체 무슨 힘으로 그 단단한 땅의 흙을 밀어내고 올라오는 것일까. 생각하면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솟아오른 싹들은 이내 작고 예쁜 꽃들을 피우기 시작한다. 화단에도 산등성에도 뜰에도 길 한 구석에도, 어디에도 꽃들은 자리를 가리지 않고 꽃을 피운다. 그래서 온 세상이 봄꽃으로 가득한 꽃 세상이 된다. 

길가에 먼지를 뒤집어 쓴 이름 없는 들꽃 하나. 오가는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피어 있어도,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 그 밖에서 혼자 피어 있어도. 그 꽃 역시 다른 모든 꽃들과 마찬가지로 모진 비바람을 받으며 땅 속에서 견디었고, 또 햇살의 따사함도 받으며 이렇듯 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모두가 가고 없는 길가 외롭게 피어 있는 작디작은 꽃 하나이지만, 너는 분명히 한 송이 꽃. 남들 다 잠든 밤, 소리 없이 내려온 달빛 하나에도 충분히 눈부실 수 있는, 분명 한 송이 꽃이 분명하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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