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어느 국회의원이 성희롱 발언으로 혼쭐이 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학이라는 곳을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대표적 자수성가형 인재라는 사람이 구설에 휘말려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인의 입에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말이 흘러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솔밭에서 바늘 찾는 것보다 더 어렵다. 가끔 터져 나오는 성희롱 발언이나 성추행 따위는 그들 정치 문화 수준의 적나라한 반증이다.
앞길 창창한 젊은 정치인이 정의도 열정도 아닌 싸구려 치기(稚氣)로 제 무덤을 판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말을 마구 해대는 것도 큰 문제다. 청소년들조차 일상대화에 아무렇지도 않게 욕이나 상스러운 소리를 섞는다.

학교에서 바른 말 고운 말을 쓰자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자님 말씀일 따름이고 현실에선 참담할 정도로 말이 거칠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해대거나 저속한 표현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정치인들이 바른 말 고운 말을 짓밟는 일등 주범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짓을 보고 배우는 법이다. TV에서도 연예인들이 나와 아무렇지도 않게 막말을 해대고 고등학교 때부터 술을 마셨네, 클럽에서 여자애들과 어울려 놀았네 하며 한때의 치기어린 행동들을 큰 자랑이나 되는 듯 떠들어댄다.

말에 책임을 지지 않으니 행동도 무책임해지게 마련이다. 표절을 하고 음주운전에 뺑소니 사고를 내고 병역을 면제 받으려 멀쩡한 생니를 뽑아도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소리 한 번 없이, 내가 뭘, 하는 표정으로 TV에 나와 희희낙락한다. 한 마디로 염치가 없다.

말이 가치가 없어지고 말을 신뢰할 수 없는 사회가 되다 보니 궤변조차 거부감이나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아이큐가 430이라거나 공중 부양을 하고 축지법을 쓴다고 헛소리를 해대도 그저 재미있다며 박수를 보내고 심지어 추종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는 세상이다.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이 특히 말에 책임을 지고 행동거지를 바로 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이 바라보고 있고 아이들이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하는 사람들과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이 좋은 본을 보이고 그래서 귀감이 되어야 하는 것은 그들이 누리고 있는 권리와 인기 못지않게 공공을 위해 당연하게 행사해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군자는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게 공자 말씀이다. 말을 앞세우기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뜻이겠지만, 앞세우는 말일지언정 진정성이 있고 거짓이 없기를 우리는 진심으로 바란다.

노자는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알지 못하면 입을 다무는 게 낫다. 침묵은 금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별 볼 일 없는 나 같은 사람조차 그게 쉽지는 않다.

개가 짖는다고 해서 용하다고 볼 수 없고, 사람이 떠든다고 해서 영리하다고 볼 수 없다. 장자의 말씀이다.

공자, 노자, 장자의 말씀이 그저 묵은 책 속의 곰팡내 나는 옛 가락이 결코 아님을 알게 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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