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임혜지 기자]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주최로 ‘2018분의 이어말하기’가 진행된 가운데 한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2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주최로 ‘2018분의 이어말하기’가 진행된 가운데 한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2

참가자들, 자신이 겪은 성폭력·성추행 경험 폭로

23일 오후 7시, 성차별·성폭력 끝장문화제 개최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세상은 지우라고 했지만 절대 지우지 않겠습니다. 네가 겪은 그 일은 성추행이 맞다고,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이제 우리 모두 말해주고 기억하고 안아줄 차례입니다.”

나우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22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2018분의 이어말하기’ 행사에서 이같이 외쳤다.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행사에 참가한 약 50명의 사람들은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라고 적힌 피켓을 흔들며 환호를 보냈다.

이날 오전 9시 22분부터 시작한 ‘2018분의 이어말하기’는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주최로 진행됐다. 행사에는 성추행·성폭력 경험을 나누고, 미투 운동에 함께 연대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참가자들은 오는 23일 오후 7시까지 무려 34시간 동안 쉼 없이 릴레이 발언을 이어간다.

사회를 맡은 나우 활동가는 “미투 운동을 보며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바뀐 것은 목소리를 낸 여성들의 용기일 뿐이지 아직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며 "가해자의 길을 용인하고 피해자 행실을 문제 삼으며 성폭력을 견디고 감춰야 했던 이 땅의 질서는 더 크게 흔들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성추행·성폭력 피해)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이 행사가 갖는 힘”이라며 “이 자리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많은 여성이 ‘나도 말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말하기 시작에 앞서 34명의 여성은 둥글게 모여 각자 자신들이 들고 있던 ‘검은 끈’을 묶어서 연결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마치 끈을 묶듯 연대해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의미다.

한국 여성민우회 소속 꽃마리(가명)씨의 발언으로 2018분의 이어말하기는 시작됐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학창시절, 연애시절과 결혼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성희롱 및 성추행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미투 운동은 여자들이 두려움 속에서도 역겨운 사회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정당한 행동”이라며 “한국의 대다수 여성은 어릴 때부터 줄곧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고 공격당할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말했다.

우연히 길을 지나다 용기를 내 마이크를 잡은 여성도 있었다. 김윤주(가명, 24, 여)씨는 “지난 여성의 날 집회를 보고 감동해 이 자리에 용기 내 섰다”며 “고등학생 때 우연히 모르는 남자에게 가슴을 잡히는 성추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 일을 겪고 어린 마음에 털어놓을 때가 없어 일기에 썼는데, 다음날 어머니가 보시고 일기장에 적힌 일을 지우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며 “내 손으로 글자를 지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머릿속에선 선명해졌다”고 호소했다.

또 김씨는 “여자 친구들 4명이 모이면 4명 모두가 성폭력·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며 “그동안 우리는 살기 위해 그 기억을 지운 채 살아가야 했다. 이젠 더 이상 그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주최로 ‘2018분의 이어말하기’가 열린 가운데 광장에 설치된 벽에 대자보가 붙어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2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2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주최로 ‘2018분의 이어말하기’가 열린 가운데 광장에 설치된 벽에 대자보가 붙어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22

광장 오른쪽에는 대자보를 붙일 수 있는 벽도 마련됐다. 벽에는 자신의 피해 경험을 적은 종이들과 성추행·성폭력 가해자를 향해 충고하거나 경고하는 문구들이 붙어있었다.

피해 경험을 폭로하는 참가자의 모습에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는 남성들의 모습도 보였다. 김현호(가명, 24, 남)씨는 “여성의 일상 속에서 성추행·성폭력이 이렇게 빈번한지 미투 운동을 보며 깨달았다”며 “이 행사를 계기로 미투 운동이 더 힘을 받고 계속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말하기 행사는 온·오프라인 접수 모두 가능하다. 온라인에는 현재 100여명이 넘는 발언자가 접수됐다. 현장에서 발언을 원하는 시민들도 바로 접수할 수 있다.

시민행동은 행사가 종료되는 23일 오후 7시부터는 ‘성차별·성폭력 끝장문화제’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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