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라진 밤’ 김상경 스틸. (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영화 ‘사라진 밤’ 김상경 스틸. (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가장 나와 닮아, 편하게 연기

옛날부터 즐거운 것 좋아해

혼자 무게 잡는 건 불편하다

 

20년 필모그라피 운 좋아 자평

나이 먹으니 앞으로 생각해

역할로 기억되는 배우가 목표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배우 김상경은 1980년대에 발생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 2003)’에서 범인을 쫓는 엘리트 형사 ‘서태윤’으로 스크린에 처음 얼굴을 비췄다. 냉철한 시각과 과학적인 수사 방법으로 연쇄살인범을 쫓던 서태윤은 러닝타임이 지날수록 이성을 잃고 감성적으로 변했다. 이후 김상경은 대중에게 형사 전문 배우 이미지로 각인 됐고, 10년 동안 100여개의 형사 역할을 제안받았다.

그런 그가 ‘몽타주’ ‘살인의뢰’ 이어 ‘사라진 밤(감독 이창희)’에서 네 번째로 형사 역을 맡았다. “또 형사 역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엔 그간 김상경이 연기했던 형사들과 조금 다르다.

취한 듯 홍조 진 얼굴에 피곤에 절어 풀린 눈을 한 우중식은 한때 후배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을 정도로 뛰어났지만 지금은 망가진 강력계 형사팀장일 뿐이다. 그가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수사하며 설희의 남편 진한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며 영화는 절정에 다다른다. 최근 본지는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김상경을 만나 형사 우중식 역을 맡은 소회를 들어봤다.

영화 ‘사라진 밤’ 김상경 스틸. (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영화 ‘사라진 밤’ 김상경 스틸. (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시나리오를 읽는데 지금까지 맡아온 형사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더라고요. 허술한 듯 보이지만 치밀하고, 온갖 너스레를 떨면서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우중식의 모습이 괴짜처럼 느껴졌어요. 국과수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우중식이 무겁지 않게 극을 끌고 나가는 모습이 새로웠어요.”

그는 형사 역을 또 맡은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나사가 조금 풀린 듯한 우중식은 건성 거리다가 특유의 날카로운 촉으로 단서를 찾아낸다. 진중하면서 호쾌한 그의 모습 속엔 김상경이 투영됐다.

김상경은 “배우는 자신의 일부 성격으로 캐릭터를 만든다. ‘살인의 추억’ ‘몽타주’ 등에서의 형사도 나의 일면이고, (우)중식도 나의 일면이 나온 것”이라며 “이 가운데 가장 나와 닮은 캐릭터는 가장 편하게 연기한 ‘사라진 밤’의 우중식”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사라진 밤’ 김상경 스틸. (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영화 ‘사라진 밤’ 김상경 스틸. (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실제로 만난 김상경은 묵직한 존재감을 보였던 작품 속 모습과 다르게 사교적이고 유쾌하다. 솔직한 대화로 분위기를 밝게 주도하다가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드러낼 땐 강력하게 피력했다.

김상경은 “워낙 옛날부터 즐거운 것을 좋아한다. 나 혼자 무게 잡고 앉아 있으면 불편하다”며 “촬영 현장에 나가면 내가 항상 ‘경칩이래더라. 알고 있었느냐’면서 사회자처럼 MC를 보듯 여러 가지 얘기를 붙인다”고 회상했다. 또 그는 “그걸 오랫동안 하다 보니까 내가 그런 재주가 있긴 한 것 같다. MC 해보라는 섭외도 들어왔으나 공부할 것도 많고,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 저는 못 하겠더라”며 “지금도 연기하는 게 가장 행복하고 재밌다. MC와 연기, 둘 다 잘하기는 힘들다”고 전했다.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놈이에요. 첫 영화가 당시 최고의 예술영화 ‘생활의 발견’이었고 두 번째가 상업영화 중 완벽한 ‘살인의 추억’이었어요. 예술영화 쪽에서 상도 받아봤고, 상업적으로도 500만 넘는 관객 수를 동원했으니 큰 탈 없이 작품을 하는 건 정말 복 받은 거죠.”

영화 ‘사라진 밤’ 김상경 스틸. (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영화 ‘사라진 밤’ 김상경 스틸. (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올해 데뷔 20주년이 된 김상경은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운이 좋았다”고 자평했다. 그는 “나이를 먹으니까 내가 어떻게 앞으로 해나갈까 생각한다. 우리는 영화를 기억할 때 제목보다 캐릭터로 기억한다. 좋은 영화의 덕목은 배우들이 역할에 녹아서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라며 “배우들이 욕심내서 시기에 맞지 않게 도드라질 때가 있다. 모든 역할이 도드라지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는 영화에서 역할로 기억되고, 다른 배우들과 어울리길 바란다. 그게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역할로 기억되는 것을 목표로 연기해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사라진 밤’은 국과수 시체보관실에서 시체가 사라진 후 시체를 쫓는 형사 우중식과,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남편 ‘박진환(김강우 분)’, 그리고 사라진 아내 ‘윤설희(김희애 분)’ 사이에서 벌어지는 단 하룻밤의 이야기를 담은 추적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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