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며칠 있으면 새로 짓는 광화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다. 오히려 우울하다. 왜냐면 문화재청이 그 현판을 우리 글자 한글이 아닌 한자로 써서 단다고 하기 때문이다.

광화문 현판은 지난 40여 년 동안 한글현판이었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 광화문의 한글현판을 보면서 세종대왕과 한글을 떠올렸고 한없는 민족적 자긍심과 자신감을 얻었다. 나뿐이 아니라 많은 국민이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 다.

그런데 정부가 문화재를 복원한답시고 그 한글현판을 버리고 한자현판을 단다고 한다. 정부가 나라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한글을 사랑하는 국민의 가슴에 못질을 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은 대한민국의 심장이고 광화문은 서울의 얼굴이며 나라의 얼굴이다.

많은 서울시민뿐 아니라 외국인도 서울에 오면 광화문과 경복궁을 보고 간다. 중국의 지배를 받던 시대처럼 한자현판을 달면 보기도 어둡고 국민의 가슴도 어두워진다. 새로 짓는 광화문에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과  시대정신을 담아서 한글로 써 달아야 문화재로서 한자보다 가치가 더 있다. 그래야 서울과 이 나라가 빛난다.

며칠 전 한글단체 대표들과 문화재청에 방문하여 한자현판을 달기로 한 결정이 잘못된 것임을 알리고 항의했다. 그 때 문화재청은 “본래 경복궁엔 근정전과 한 두 건물만 있고 폐허와 같았다. 모두 불타서 돌계단이나 석축만 남았고 건물 설계도도 없었다.

그래서 1990년부터 제모습 찾기를 시작했고 여러 개 건물을 지었다. 옛날에 한자였기에 새로 지은 건물의 현판을 모두 한자로 달았다. 그 복원차원에서 광화문도 한자로 하니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우리도 경복궁 정비를 찬성한다. 그러나 우리가 왜 광화문 현판만은 한글로 달자고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문화재위원과 문화재청은 정확한 원형이 없으나 기와집으로 건물만 짓고, 글자는 한자로만 쓰면 문화재 복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일반 국민처럼 한자로 썼었던 것이니 한자로 써야 복원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세종 때 처음 원형이 아닐 바에는 세종정신과 국민의 소망을 담아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 한글로 만드는 일은 단순한 복원을 넘어 새로운 문화 창조요 민족문화 발전임을 상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세종대왕은 경복궁 창건 때 정도전이 지은 정문(正門)이란 처음 이름까지 버리고 광화문(光化門)이라고 바꾸게 했다. 단순히 경복궁의 앞쪽 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나라와 겨레가 빛날 궁궐의 문이라는 큰 뜻을 담아 이름 자체까지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으로 나라를 빛낼 정책을 많이 펴고, 세계 으뜸가는 글자인 한글을 만들었다. 세종임금의 이 정신과 업적은 그 뒤 임금들의 표본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세종임금의 그 정신을 이어서 전통 민족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고 어려운 살림에도 광화문을 새로 짓고 한글현판을 달았던 것이다.

우리 한글단체와 많은 국민이 그 세종정신을 받들고 업적을 이어가고 빛내자고 세종이 만든 한글로 현판을 달자는 것인데 문화재위원들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배우고 아는 게 한자와 기와집 짓는 일이고, 사랑하는 게 한자뿐인 사람들로 보였다.

저들의 한글현판 반대는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한 집현전 최만리 일파의 의식과 똑같아 보였다. 우리도 원형 한자현판이 있다면 떼자고 하지 않겠다. 원형 설계도나 설명서라도 있다면 그러자고 하겠다. 그런데 희미한 사진을 보고 디지털 짜깁기로 만든 것은 원형 복원이 아니라 복제요 모조품일 뿐이다.

더욱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국치 100년인 광복절과 외국 정상회의 때 외국 손님에 보여주기 위해서 본래 10월 8일에 제막식을 하기로 한 계획도 버리고 8월 15일로 앞당겨서 한자로 단다는 것도 웃긴다. 자주정신과 자주국가가 소망이고 외국인에게 자랑하려면 한글현판으로 달아야 할 것이다.

한자현판은 처음에 한자였다는 거 말고는 큰 의미가 없지만 한글현판은 경복궁이 세계 으뜸 글자가 태어난 세계 문자 문화 성지임과 우리가 문화민족임을 알려주고, 선진국과 이웃나라에 어깨를 펼 수 있도록 해주는 등 그 의미와 가치가 매우 많고 크다.

아! 날마다 세종대왕 등 뒤에 있는 한자현판을 어떻게 볼 것인지, 외국인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제막식도 계획대로 늦추고, 한글 현판으로 달 것을 배달겨레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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