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무엇에다 비유할꼬. 언젠가부터 뿌리 내린 팬덤(광적 팬클럽)이라는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으며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모순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판 속박이며 식민지가 양의 탈을 쓰고 대한민국을 삼키고 있다.

1935년 동아일보 창간15주년 기념 특별공모에 당선되고 연재된 장편소설 ‘상록수’가 생각난다. 심훈의 ‘상록수’는 박동혁과 채영신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일제 식민지 수탈로 인한 참담한 현실을 깨우는 농촌계몽운동을 실제의 경험을 통해 담은 픽션으로 민족의 저항의식을 고취시킨 불멸의 소설이다.

이 소설을 통해 일제 식민지의 참상과 거짓에 굴복당하고 살아가는 조국의 현실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일제로부터의 독립운동은 더욱더 가속화 돼 갔다. 결국 무지가 속박의 원인이며, 깨어나면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말하고자 함은 당시는 총과 칼에 굴복 당했다면 오늘날은 ‘말’과 ‘여론’이라는 인민재판식 여론몰이에 의해 속절없이 거짓이 참이 되고 참이 거짓이 되는 놀라운 시대를 맞이했으니 곧 팬덤 문화가 온누리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세 칼빈의 장로교라는 거짓 종교에서 자행되던 마녀사냥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칼빈은 자기를 따르지 않는다하여 그야말로 마녀사냥 즉, 이단 정죄로 온갖 극형의 방법을 동원해 사람들을 죽였다.

오늘날도 내가 지지하는 바와 내 생각과 다르다면 여론을 만들어 모리배들(팬덤)을 동원시켜 여론몰이를 해 잔인할 정도로 매장시킨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살아 있는 독재며 식민지며 마녀사냥이다. 그러함에도 오히려 가장 선하고 가장 정의로운 듯, 양의 탈을 썼기에 국민들은 그들의 사냥놀이에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선과 악이 혼재해 분별력을 잃고 만 것이다.

과거 상록수에서 그랬듯이, 이제 누군가는 이 같은 이 나라의 현실을 알려 생각과 의식을 깨워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과거 정부와 정권의 부패는 무식의 발로였다. 그렇다할지라도 그러한 역사가 있으므로 잘잘못을 논할 수 있는 오늘이 존재할 수 있으며 또 내일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은 여론몰이가 아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은 애써 지난 역사를 부정하고 무시하려는 노력이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다. 역사란 긍정과 부정이 상충하는 가운데 써내려가는 대서사시와 같은 것이다. 과거 역사의 부정적 요소는 적폐로 간주해 없애겠다는 의도가 뭔지, 또 긍정적 요소는 오늘의 정부를 있게 한 역사라며 옹호하고 있으니, 큰 틀에서 볼 때는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역사란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면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혼이며 정신이다. 이처럼 면면히 이어온 거대한 물줄기와 같은 역사를 자신들의 유불리를 따져 접근하는 모순이야말로 어떠한 저의를 의심케 하는 부분이며,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적폐며 나아가 매국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에 의해 탄생된 정부라 자평한다. 어쩌면 세월호 사건이 만들어 준 정부라 하면 그게 더 합당할 것이다. 세월호와 함께 안전한 나라, 정의로운 나라, 차별이 없는 나라를 역설해 왔다. 이제 정권을 잡았다. 그 후 사고로 인해 희생된 억울한 영혼들이 그 어떤 정권보다 많이 발생하고 있다. 공약 때마다, 취임사를 통해, 행사마다 다짐하던 그 약속은 허망한 소리가 되고 말았다. 왜 304명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냐고 묻고 싶다. 또 한 영혼의 희생됨이 수요가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냐고 묻고 싶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신문고라는 국민과의 약속도 있다. 국민들이 원한 바도 아니다. 문 대통령 스스로 국민 앞에 천명한 지도자의 약속이다. 정권유지에 유불리를 계산하고 국민들의 지지여부를 고려하며 답을 준다면 이는 국민을 조롱하는 기회주의적 처사가 분명하다. 애당초 그 약속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으며 인기에 급급한 즉흥적 해프닝에 불과했다. 과거 왕정시대는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기에 신문고라는 제도가 마땅히 필요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엄연히 삼권분립의 민주공화정 시대다. 이 시대에 국민신문고라는 것은 삼권 위에 군림하며 내가 다 하겠다는 비민주적 사고가 낳은 제도며, 한마디로 민주제도를 부정하는 오만한 발상에서 비롯됐다.

요즘 미투운동을 말하지만, 이미 그 본질은 사라졌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안희정 정봉주 박수현 등 가해자 피해자 간의 난투전의 진면목을 들여다봐야 한다. 미투라는 본질이 정치공작으로 순식간에 변질돼 버렸다. 야당이 여당을, 여당이 야당을 음해하는 게 아니다. 자중지란이라는 말처럼 여당세력 안에서 친문과 비문 간의 팬덤을 이용한 세력싸움으로 비화돼 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국민들은 지금 정권욕으로 불타 있는 세력의 물고 뜯는 민낯을 보고 있다.

명성은 높으나 능력이 부족한 정부, 팬덤으로 무너뜨리고 팬덤으로 무너지는 슬픈 정부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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