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교사는 학교에서 수업, 학생지도, 급식지도 등 학생과 관련된 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아이들 가르치려고 교사가 됐는지? 행정업무(잡무)를 하려고 교사가 됐는지?’ 헷갈릴 정도로 잡무에 시달린다. 특히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과 국정감사를 앞둔 9월은 폭탄 수준의 공문이 학교에 투하된다. 새 학기가 되면 교사는 새로 맡은 학생들의 신상을 파악하고, 배정된 학년의 수업자료를 준비하고 학교에서 분장된 업무를 파악해야 하는데 잡무에 뺏기는 시간이 더 많다. 교사의 잡무는 공교육의 질을 하락시키고 교실 붕괴의 시발점 역할을 한다.

새 학기에는 맡은 학급의 학생 정보를 생활기록부에 전산화하는 작업, 연간 교육계획, 부서별 운영계획, 과목별 진도 계획 등 계획서 작성에도 많은 시간을 뺏긴다. 정작 중요한 수업 준비나 학생과의 친밀감 형성, 생활 지도 등은 뒷전으로 밀린다.

잡무 외에도 학교, 학급 내 각종 위원회 구성, 방과 후 학교 운영 지원, 교과서 선정·파본 확인·배포, 교실 청소도구 확보, 배부 등도 모두 교사의 몫이다. 학교업무를 총괄하는 교무부 소속 교사는 1년 내내 잡무에 시달린다. 교무부에서 매년 초 구성해야 하는 교내 위원회가 학교운영위원회 등 10여개에 달한다. 각 위원회마다 ‘외부 인사를 많이 참여시키라’는 교육부 공문 탓에 섭외하기 위해 며칠을 전화에 매달려 사정해야 한다.

학교폭력(학폭) 사안 처리도 교사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학폭 신고가 접수되면 민원 발생 소지를 줄이기 위해 경중에 관계없이 무조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연다. 학교폭력위원회를 담당하는 생활지도부는 잡무가 많고 학부모 민원까지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 탓에 기피 부서 1위가 됐다.

필자도 퇴직 전 정보부장이란 보직교사를 10여년 했다. 정보부는 교내 모든 컴퓨터 기자재, 프린터 관리, 학교 ip 및 보안관리, 정보업무에 관련된 공문을 처리한다. 연간 정보부 운영계획, 보안 관리 계획, 인터넷 중독 검사 계획 등을 작성한다. 학교 내 컴퓨터가 고장 나면 정보부로 먼저 연락이 온다. 전원코드가 빠져 부팅이 안 되는걸 확인도 안하고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 수업이 없는 빈 시간에 휴식도 취하며 다음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컴퓨터 수리에 매달리다 시간을 보낸다. 최근에야 수리 신청 대장을 만들어 두고 1주일에 2회 방문하는 수리기사에게 의뢰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방과 후 학교 업무는 가장 힘든 업무다. 방과 후 수업을 담당할 강사 선발, 위탁업체와 계약, 강사 관리 및 수강료 지급, 방과 후 학생 선발, 문제 학생 관리 업무를 하고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학교에 남아 야근을 한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 방과 후 부장을 시켰다고 바로 병가를 내고 출근 안하는 교사도 봤다.

교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공문이 ‘국회의원 요구자료’다. 오전에 보낸 후 오후 3시까지 긴급 보고하라는 공문이 많다. 이런 공문이 오면 자습을 시키고 그 시간에 현황 파악하고 보고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심지어 똑같은 자료인데도 여러 의원실에서 각기 다른 양식으로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교사들이 잡무에 시달리는 이유는 새로운 업무는 계속 생기는데 기존의 쓸데없는 잡무는 없애질 않아 생기는 문제다. 교육청 차원에서 공문서를 줄인다, 잡무를 없앤다는 말을 벌써 10년째 하고 있지만 줄어든 것은 미미하다. 학교차원에서 잡무를 만드는 학교도 있다. 교사는 방학 중 연수, 근무, 출장 등에 대해 ‘41조 연수’라는 항목으로 교감, 교장의 전자 결재를 받는다. 그런데 이를 종이문서로 교장에게 다시 결재를 받으라는 학교도 있다. 전자결재가 왜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고 교장의 권위를 내세우려는 작태에 불과하다.

교사의 잡무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 학교에서 교무업무 전담직원을 채용하는데 이마저도 교감이나 교무부, 연구부 등 핵심부서의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교사들에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아 잡무 경감 대책으로는 무용지물이다.

교사는 오직 수업과 학생지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지고 교사의 성과도 수업과 학생지도로 평가 받아야 한다. 원로교사도 최소한 자기 맡은 일은 해야 한다. 일은 안하며 후배 교사에게 대접받을 요량이라면 일찌감치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공교육이 제대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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