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 (출처: 뉴시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임기 중 최악의 위기일까.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데 이어 올 가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장기집권까지 노리던 아베 총리가 내우외환에 몰렸다.

국내에서는 사학스캔들과 관련 국회에 제출한 문서를 수정했다는 언론의 문제제기를 재무성이 인정하면서 총리 사퇴 요구까지 나왔으며 대외적으로는 남북과 북미간 대화가 성사될 예정인 가운데 일본이 대북 대응 논의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아베 내각의 지지율까지 급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학스캔들 재점화… 재무성 조작인정에 총리직 사퇴 요구도

아베 총리는 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이 국유지를 헐값으로 사들이는 과정에서 자신 혹은 부인 아키에 여사가 관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작년 초 처음 불거진 사학스캔들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에 한동안 잠잠했으나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이 지난 2일 재무성이 국회에 국유지 매각과 관련한 내부 결제 문서를 제출할 때 원본에서 ‘특수성’ 등 특혜임을 뜻하는 문구를 여러 곳에서 삭제했다고 보도하면서 다시 논란이 일었다.

12일 재무성은 내부 결재 문서 14건에서 이 같은 조작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국회에 냈다. ‘본건의 특수성’ ‘특례적인 내용’ 등 특혜임을 시사하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뺐으며 아키에 여사와 전직 장관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이름을 삭제했다는 게 골자다. 이에 야권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아베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다마키 유이치로 희망의 당 대표는 트위터에 “아소 부총리는 물론, 총리 자신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으며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도 “아소 부총리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스트 아베로 주목 받는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도 “의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설명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올 9월 열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세번째 연임에 성공하면 2021년까지 임기를 연장, 개헌을 통해 일본을 전쟁가능한 국가로 만들려는 목표가 있었다. 재무성의 문서조작 인정이 아베 총리의 퇴진까지 타격을 줄지는 미지수지만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사학스캔들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요미우리신문이 10~11일 18세 이상 10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설문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지난달보다 6%p 급락한 48%로 나타났다.

지지율 하락은 특히 고령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60세 이상만을 대상으로 한 내각 지지율은 전달 조사 대비 9%p 떨어진 37%에 그쳤다.

지난해 사학스캔들로 퇴진 위기에 처했을 당시 아베 총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과장하고 한반도 전쟁 위협을 강조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는 이른바 ‘북풍(北風) 몰이’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특히 작년 10월 중의원을 해산하고 치른 총선 과정 중 유세장에서는 틈만 나면 북한의 도발 상황을 얘기하며 정권을 연장해달라고 호소했다. 안보 위기를 강조해 유권자들을 불안하게 하면서 안정을 위해 여당에 투표하자는 여론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지난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국회 해산과 총선을 가능하게 했던 동력이기도 했다. 사학스캔들로 한때 20%대까지 떨어졌던 내각 지지율이 북한 도발로 50% 이상 올라섰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국회 해산 카드를 꺼낼 수 있던 것이다.

◆대북 대화분위기에 북풍도 안먹혀… 9월 선거에 빨간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출처: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출처: 뉴시스)

그러나 이번에는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화되는 등 대북 대화 분위기가 퍼지면서 북풍 몰이도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는 아베 정권에 또다른 위기를 직면케 했다.

그간 대북 압력 노선을 국제사회에 줄기차게 호소해온 일본 정부의 입장과 정반대로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열기로 하면서 일본이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머리 위에서 중요한 일이 휙휙 결정되는 상황을 뜻하는 ‘아타마고시(頭越し)’라는 말도 오르내린다. 이른바 ‘재팬 패싱(Japan passing)’에 대한 우려다.

한 전직 방위상은 지난 10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완전히 일본의 머리 위에서 (일본을 배제한 채) 정해졌다”고 말했고 야부나카 미도시 리쓰메이칸대 특별초빙교수는 “북미정상회담의 급격한 전개에 일본이 방관자로서 배제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5월 중으로 결정되자 다급해진 아베 총리는 이에 앞서 4월에 미일 회담을 열기로 했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AIEA)로부터 핵사찰을 받게 될 경우 인원과 기자재 조달에 필요한 초기비용 3억엔(약 30억 3000만원)으 부담할 방침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해 한반도 문제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다.

교도통신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에 비해 뒤쳐진 일본이 비핵화에 공헌하는 자세를 보여 존재감을 발휘하려는 것”이라며 “북한에 핵포기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압박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도 12일 일본에게 비핵화·평화체제 로드맵을 지지해줄 것을 설득하기 위해 서훈 국정원장을 보냈으나 일본 정부가 그간 강하게 외쳐온 대북 정책 노선을 바꿀 가능성은 미지수다. 

일본 정부는 재팬 패싱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면서도 최근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깎아 내리며 기존의 대북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은 전날 도쿄에서 한 강연에서 “북한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대화를 시간벌기의 구실로 활용해왔다”고 말했다.

다나카 히토시 일본종합연구소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은 마이니치신문에 “(북한에 대한) 압력만 강조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허심탄회하게 일본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에 대북정책을 수정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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