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한국기술금융협회 IT 전문위원

 

Lock-in(락인)이란 단어가 어색하게 여겨질 독자도 있을 수 있으나, 마케팅 분야에서는 이미 이를 위한 전략수립이 매우 중요한 절차가 됐다. ‘락인’이란 일종의 ‘자물쇠로 잠그는 행위’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잡아둔다는 의미이며, 밖으로 빠져나간다는 Churn-out(쳔아웃)과는 반대의 의미로 사용된다. 즉 소비자가 어떤 상품 또는 서비스를 구입, 이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유사한 상품 또는 서비스로의 수요 전환이 어렵게 되는 현상을 의미하며 이른바 ‘고착효과’라고도 불린다. 결국 기업의 안정적인 수익창출을 위해서는 자신들의 고객을 계속 ‘락인’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어떠한 전략으로 기존 고객들을 계속 유지시킬 것이냐 하는 정교한 전략 수립이, 경쟁이 점점 심화되는 최근의 기업환경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생존 조건이 되고 있다. 

이러한 ‘락인 효과(Lock-in effect)’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컴퓨터 자판 사례이다. 현재 컴퓨터 자판은 19세기 후반 타이핑을 사용하던 시절부터 사용되는 ‘QWERTY’ 자판을 사용하고 있다. 컴퓨터나 노트북 자판을 보면 왼쪽 위 부분에 위와 같은 알파벳 순서로 자판이 나열돼 있어 그렇게 부르고 있는데 당초 본 자판은 타이피스트들이 빠른 속도로 연속해서 타이핑 자판을 누르면 인접 키들끼리 엉켜져 고장이 발생하므로 타이핑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 개발된 것이다. 발명자인 C.L. Sholes는 이러한 엉킴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는 알파벳의 배열을 멀리 떨어지게 고안해 내었고 그것이 현대 자판의 효시이자 지금도 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00년대 초, ‘QWERTY’ 자판 방식이 엉킴고장을 줄이는 데는 기여했지만 타이핑 속도를 높이고자 하는 욕구가 고조되면서 본 자판의 배치는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대두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워싱턴 대학의 A. Dvorack 교수는 1932년부터 자판 개선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고 타이피스트들의 타이핑 모습과 그 속도가 늦어지는 원인을 분석하는 등, 십여년의 연구를 통해 자판 가운데에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문자를 배열하고 그 위와 아래에 비교적 사용이 크지 않은 문자를 배열했다. 또한 양손을 번갈아 사용해 타이핑할 때 리듬감을 가질 수 있도록 왼손이 닿는 곳에 모음을, 오른손이 닿는 곳에 모음과 함께 자주 오는 자음을 배치해 ‘QWERTY’ 자판이 가지고 있던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미국표준기관(ANSI)과 장비제조업체는 장시간의 연구 끝에 개발한 혁신적인 본 ‘Dvorack 자판기’를 ‘QWERTY’ 자판기의 대체 디자인으로 공식 인정했다. 그러나 Dvorack 자판기는 결국 확산되지 못했고 지금도 우리가 사용하는 자판기는 여전히 ‘QWERTY’ 자판 방식이다. 이는 아무리 비효율적이라 하더라도 이미 소비자는 ‘QWERTY’ 자판에 익숙해져 있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숙해지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므로 소비자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으며 사용 확산이 이루어 지지 않은 큰 원인이 됐던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어떤 표준에 한번 lock-in되면 그 표준을 버리고 다른 표준으로 바꾸는 데 드는 이른바 스위칭비용과 투입시간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게 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지배적 표준을 만들어 소비자를 lock-in하게 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타 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기술의 변화가 매우 심한 IT산업의 경우, 소비자들을 선점해 그대로 유지하려는 lock-in 전략이 매우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는 이유이다.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는 이른바 선도기술(Leading technology)을 활용해 경쟁자보다 먼저 소비자를 확보하고, 확보된 고객의 패턴을 분석해 자사의 고객으로 지속 유지시키는 것은 물론, 추가 구매로 유인하고, 좀 더 크게는 빅마우스의 역할을 유도해 자연스런 자사 홍보수단으로서의 역할도 가능토록 하는 것이 바로 lock-in의 궁극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lock-in하는 고도의 전략 수립이 지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업들 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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