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요즘 어딜 가나 ‘미투(Me Too)운동’ 얘기가 단연 화제다. 사회 각 부문에 걸쳐 ‘권력’을 업고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거나 농락하면서 동시에 침묵을 강제했던 오랜 병폐들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자 모두가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있는 듯하다. 특히 최근 며칠 동안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촉망받던 차세대 정치 지도자와 여성, 특히 그 관계가 피해 여성의 폭로를 통해 ‘성폭력’으로 전해지다 보니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한순간의 관심이 아니라 거대한 변화를 향한 ‘혁명적 에너지’가 폭발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불평등하고 억압적이며 반인권적인 남성 중심의 ‘젠더권력’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더 평평해질 것이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영화계에서 시작된 ‘미투운동’은 이미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혁명 등의 거대한 변화가 그렇듯이 ‘미투운동’의 시작도 이처럼 미미했다. 어떤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대단한 사건이 터진 뒤의 폭발도 아니었다. 영화 제작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한 여배우의 폭로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면서 비슷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하나둘씩 동참하면서 큰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여성들의 몸과 마음을 유린하는 ‘젠더권력의 폭력성’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선언인 셈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그 ‘자유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어떤 방식이든 더 평평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당위’이며 ‘정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일부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왜곡, 반동이 수없이 나타나겠지만 자유적 가치를 담보하고 있는 한 모든 권력은 점점 더 평평한 쪽으로 진화할 것이다. 지역과 인종은 물론이요 신분과 계층의 높낮이도 갈수록 더 평평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힘 있는 남성과 그 아래에 있는 여성간의 권력관계, 즉 ‘젠더권력’만큼은 상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성적인 것이 매개되는 만큼 개인적이거나 내밀한 문제로 치부되기 때문에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기제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들의 ‘암묵적 은폐’와 여성들의 ‘강요된 침묵’으로 인해 그 심각성이 정치적 의제로 충분히 다뤄지지도 못했다. 그저 사적 일탈이거나 사회적 범죄 수준으로만 인식돼 왔던 것이다.

‘젠더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여성의 인권까지 짓밟는다는 점에서 가장 저급한 권력관계이다. 이런 점에서 가장 절박하고 엄중한 정치의제이며 사적 영역을 넘어서 사회구조적으로 해법을 찾는 것이 옳다. 오랫동안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할 것 같았던 ‘젠더권력’의 거대한 구조가 이제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는 듯하다. 이런 운동이 세계적 흐름을 타고 지금 한국에서도 폭발하고 있다니, 마치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프지만 이 또한 거대한 진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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