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박윤진 고용평등상담실장.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8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박윤진 고용평등상담실장.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8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박윤진 고용평등상담실장

 

미투, 일선에서는 체감 낮아

성희롱 상담횟수 변화 없어

 

직장 밖 성추행 피해도 심각

‘직장’ 범위, 사회적 합의 필요

 

여가부 정책 ‘언 발에 오줌누기’

사업장 내 상담원 배치도 방법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지난 1월말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로 촉발된 ‘미투 운동’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겪었던 ‘성희롱·추행·폭행’ 내용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사법계를 시작으로 문화·예술·종교계 등으로 들불 번지듯 퍼지고 있는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 ‘성’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게 만들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여성가족부(여가부)는 ‘범정부협의체(위원장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를 구성해 국가기관, 지자체, 공공기관 등 4946개 기관에 대해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특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미투 운동’이 강타한 우리사회. 과연 변화가 되고 있다고 봐야 할까. 그간 직장 내 성희롱·추행 등 피해상담을 해온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박윤진 고용평등상담실장에게 들어봤다.

-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이 급격하게 확산한 배경은.

사실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 괴롭힘이나 폭력에 대해서 말을 안 해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피해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수렴해주는 곳이 없었다. 2차 피해 등 그간 보호받지 못했었고, 함께해주며 도움을 주는 조력자들, 같이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회적인 분위기로 보면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발생한 2016년 이후 흐름이 달라졌다. 전반적으로 감수성이 높아졌다고 봐진다.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폭로가 하나의 도화선이 될 수는 있었지만 그런 마중물이 곳곳에서 있어왔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 전반적으로 감수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는.

‘감수성’은 ‘자기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일테면 최근 한국여성의전화에 80대 할머니가 상담한 내용을 보도로 접했다. 동네 한의사가 할머니들을 상대로 추행을 했던 모양인데, 이 할머니는 ‘숭한 짓’이라고 표현했다. 이 할머니는 미투 보도를 보기 전에는 그게 뭔지 몰랐다. 그런데 미투 보도를 보고 ‘이게 그런 맥락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이게 범죄고, 추행이며, 나쁜 짓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가해자의 행동이 문제가 되는 행동이라는 자각은 취약계층일수록 어렵다. 그루밍 등 학습으로 친절과 범죄 사이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당했어도 그게 성폭력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미투는 ‘내가 당했다’는 것보다 ‘내가 이제 말한다’는 표현으로 봐야 한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박윤진 고용평등상담실장.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8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박윤진 고용평등상담실장.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8

- 우리사회 성추행에 대한 인식 정도는.

성폭력의 피해 유형은 굉장히 다양하다. 형법상 범죄에 해당하는 강간이나 추행에 해당하는 것도 있지만, 직장생활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규정으로 폭넓게 다루고 있다. 범죄로 규정되는 경우와 경미한 성희롱의 경우 인식이 다르다. 가해자가 ‘그게 무슨 성희롱이야’라고 하거나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고, 무시당하거나, 조직이 해결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감수성이 낮은 수준의 조직에서 일하다 보니 문제제기를 했을 때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가 있다. 호식이치킨 사건 등 우리가 아는 꽃뱀 프레임, 피해자 유발론, 이런 것들이 가중돼 2차 피해가 발생한다.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 방향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목도했다. 이런 사례는 일종의 학습효과를 일으킨다. 입 다물고 살아남거나 조직을 떠나거나 하는 등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최근 미투 운동에 동참한 여성들을 어떻게 바라보나.

최영미 시인이나 서지현 검사 등 미투 운동에 선봉 있는 이들은 40~50대 여성이다. 많은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더 취약했을 때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 젊은 여성, 혹은 불안정한 여성 등이 피해자인 이유다. 최 시인이나 서 검사 등 특징을 보면 조직 내에서 살아남아서 어쨌든 지위의 성장을 이룬 후 ‘이제는 말을 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이렇듯 여성의 지위 변화도 미투 운동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 같다.

-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미투 운동의 계기가 됐다고 보는 이유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여성을 향한 사회적 혐오, 폭력적 시선과 언동 등이 화두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이 폭발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피해 공감대 형성 등도 가시화됐다. 이런 것들이 변화의 계기나 흐름을 만들어냈던 것은 분명하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박윤진 고용평등상담실장.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8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박윤진 고용평등상담실장.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8

- 일각에서는 촛불혁명이 미투 운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기도 하는데.

조심스러운 문제다. 촛불집회 당시에도 여성들은 별도로 모여서 결이 다른 집회를 했다. 소위 정의를 외치고 선악을 외치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집회에서도 성희롱·성추행은 있어왔기 때문이다. 촛불집회가 집회문화를 새롭게 썼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촛불의 흐름이 미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 직장에서 이뤄지는 성희롱, 이유가 뭔가.

2016년 성희롱 실태조사에서 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참는다. 참는 이유에 대해 여성은 50%가 ‘문제 제기를 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했다. 남성이 참는 이유는 ‘참을 만해서’였다. 직장에서 ‘권력’은 다양하다. 성별, 근속연수, 고용형태, 직위 등이 미묘하게 결합돼 있다. 성희롱은 성차별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봐진다. 조직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남성, 특히 직위가 높고 나이가 많은 경우 문제에 대해 가해자의 개인적인 일탈행위로 본다. 도리어 문제 제기한 사람이 문제가 된다. (조직 입장에서는) 도려내면 되니까. 폭력을 용인하고 차별을 용인하는 조직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직이 책임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현행법은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일단 규율하고 있다. 실효성 있게 작동하느냐는 별개다.

- 미투 운동으로 이 같은 조직문화가 바뀔 수 있을까.

최근 한국영화협회에서 신고센터를 만들었더라. 내부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내부 인사들을 규율할 수 있는 이런 인사권을 갖고 있는 조직들은 모두 이 문제에 대해서 조직들이 책임 질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미투 운동의 결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재 미투 운동은 가해자가 유명인이거나, 가해 행동이 법적으로 범죄에 해당되는 성폭력에 대해서만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가 유명인이 아니고, 경미할 경우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어렵다. 해당 조직이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이 이 운동의 결과로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여가부에서는 2019년까지 특별점검에 나선다고 하는데.

여가부 정책도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임시방편이라고 본다. 이 정책으로 조직의 책임을 강제할 수 있겠는가. 신고센터는 외부 전문가가 결합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내부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조력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 성희롱 고충 상담원을 몇인 이상 사업장에 반드시 두도록 하고 그들에 대한 교육을 정부가 책임지는 것도 방안일 수 있겠다. 또는 외부 기관에 위탁하거나 전문가가 반드시 참석해서 판단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게 실효성이 있다. 물론 이 같은 방안은 공공기관에서는 더 수월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민간이다.

- 직장뿐만 아니라 여성은 사회활동을 하면서 성추행을 당하기도 한다. 어떻게 봐야 하나.

직장이라는 것을 어디까지 봐야 할까. 직장 내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법 적용을 받는다. 가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권위원회에도 적용을 받기 때문에 좀 더 넓다. 그러나 노동법이 사업장과 사업장 단위로 규정하기 때문에 내가 일을 하다가 고객이나 다른 업체 직원에게 성희롱을 받아도 성희롱이라고 적용을 받지 않는다. 업무상 발생한 성희롱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성희롱이란 정의규정만 바뀐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시간이 걸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 미투 운동이 직장 내 성희롱 상담 등에 끼친 영향은.

체감 수준은 낮다. 2014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는데, 전체적인 여성노동과 관련된 상담이 400건대였다. 이후 500건대, 600건대 되다가 2016년 1300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작년에는 1900건이었다. 이 중 성희롱 건으로 상담을 요청한 사례가 1200~1300건이다. 지난 1월 말 미투 운동이 일어난 후 근 한 달간 상담 건수가 급증하진 않았다.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폭넓은 수준까지 미투 운동이 나아가지는 못한 것이라고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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