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들’ 스틸. (제공: 리틀빅픽처스)
영화 ‘괴물들’ 스틸. (제공: 리틀빅픽처스)

 

학교폭력 문제 꼬집은 청춘 누아르

‘제초제 음료수 살인 미수 사건’ 모티브 삼아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2011년 경기도 광명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한 학생이 자신을 벌레 취급하는 등 모욕하고 심하게 괴롭혀온 같은 반 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제초제를 음료수에 섞어 마시게 한 것이다. 학교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가해자 학생은 제초용 농약을 매실 음료와 섞어 자신을 괴롭힌 친구의 사물함에 놓았고, 이 음료를 마신 7명의 학생은 구토와 마비 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3년 동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가해자가 스트레스로 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영화 ‘괴물들(감독 김백준)’은 자신을 괴롭히던 같은 반 급우에게 복수하려고 했던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청춘누아르다. 영화는 폭행을 당한 평범한 소녀가 가해자에게 시달리며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이야기를 그려낸 ‘한공주(2013)’와 악플과 과도한 신상털기, 현피(현실 결투) 생중계 등 20대 청춘들의 어두운 인터넷 문화를 날카롭게 그린 ‘소셜포비아(2015)’ 등에 이어 학교폭력 실화를 모티브로 한국 영화계, 더 나아가 사회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영화 ‘괴물들’ 스틸. (제공: 리틀빅픽처스)
영화 ‘괴물들’ 스틸. (제공: 리틀빅픽처스)

 

영화는 한 학교의 권력 일인자가 제초제 음료수를 마신 사건으로 시작된다. 사물함 속 제초제 음료수를 마신 교내권력 일인자가 입원하자 이인자인 ‘양훈(이이경 분)’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 고등학생 ‘재영(이원금 분)’은 양훈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다. 정해진 시간 내에 빵을 사 오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양훈의 말에 다른 친구들을 밀치며 전속력으로 매점으로 달려가 빵을 사서 가져온다. 제시간에 사서 왔음에도 양훈은 빵이 안쪽까지 데워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영을 구박하고 때린다.

양훈의 괴롭힘이 점점 더 심해져 가던 어느 날 재영에게 미션이 주어진다. 양훈은 재영에게 자신의 짝사랑 ‘보영(박규영 분)’의 뒤를 밟게 시킨다. 재영은 보영과 똑같이 생긴 ‘예리’를 통해 상황을 모면해보고자 하고, 이 일은 점점 참담한 결말로 달려가는 지름길이 된다.

영화 ‘괴물들’ 스틸. (제공: 리틀빅픽처스)
영화 ‘괴물들’ 스틸. (제공: 리틀빅픽처스)

 

학교폭력을 다룬 영화인만큼 ‘괴물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확하다. ‘제초제 음료수 살인 미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사건 자체에 집중하는 대신 왜 이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다가간다.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하며 경계에 놓인 인물을 조명하는 것에 집중해온 김백준 감독은 5년 동안 ‘괴물들’을 준비했다. 김백준 감독은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이 단순한 흥밋거리나 한번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학교폭력이 불러올 수 있는 비극의 한 형태로 다가갔으면 한다”며 “학교폭력 피해자가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폭력의 가해자로 변해간다. 약자를 향하는 폭력과 한 아이가 짊어져야 할 고통과 책임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의 의도는 영화에 잘 담겼다. 영화는 폭력과 결과보다 그 뒤 숨겨진 원인과 과정을 살펴본다. 피해자였던 이들이 왜 가해자가 될 정도의 감정이 생기게 됐는지를 심도 있게 들여다본다.

영화 ‘괴물들’ 스틸. (제공: 리틀빅픽처스)
영화 ‘괴물들’ 스틸. (제공: 리틀빅픽처스)

 

영화의 시간은 피해자였던 재영의 시선에 따라 흐른다. 제작진은 영화의 메시지와 학교폭력, 캐릭터의 감정을 부각하기 위해 인위적인 연출과 화려한 기교를 걷어냈다. 김 감독은 양훈과 친구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하는 재영의 일상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교폭력을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약자인 재영은 끊임없이 학교폭력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폭력의 굴레에서 맴도는 게 현실이다. 고통받는 재영이 충격적인 선택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혼돈과 억압, 두려움 등은 관객을 긴장감으로 몰아넣는다.

이때 교감, 부모님 등 어른들은 아이들의 문제를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방관한다. 그나마 ‘강형사(김성균 분)’가 짧게 등장해 유일하게 관심을 갖지만 그것뿐이다. 영화가 곧 현실이다.

영화 ‘괴물들’ 스틸. (제공: 리틀빅픽처스)
영화 ‘괴물들’ 스틸. (제공: 리틀빅픽처스)

 

배우들의 합도 매우 좋다. ‘그물’ ‘여교사’ 등으로 이름을 알린 이원근은 폭력으로 점철된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는 재영으로 분한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관객의 마음을 훔친 신스틸러 이이경은 생애 첫 악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펼친다. 여기에 신인 박규영이 지적장애아 ‘예리’와 도회적인 매력을 가진 ‘보경’ 등 1인 2역 캐릭터를 소화했다.

영화는 끊을 수 없는 폭력의 사슬에 묶은 청춘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담아 뜨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또 올해를 대표하는 문제작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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