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전체 교권침해 사례 중 학부모로 인한 교권침해의 비중이 2009년 0.7%(11건)에서 2016년 4%(64건)로 6배 가까이 증가했다. 과거에 비해 정보통신기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학부모로 인한 교권침해가 더욱 쉬워진 탓이다. 교사들은 “학부모가 교사를 콜센터 직원처럼 생각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 사생활마저 사라지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심지어 퇴근 후에도 학부모 단톡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언제 메신저가 날아올지 모르는 불안감과 우울증, 불면증에 시달린다. SNS 탓에 개인시간조차 방해받고 있는 교사들도 많다. 그동안 주로 회사 내 상하관계의 문제로 부각됐던 ‘단톡방’ 문제가 일선 학교의 교사, 학생, 학부모까지 연결되면서 교직사회의 새로운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퇴근 후에 교사에게 메신저를 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카카오톡(이하 카톡)’을 탈퇴하는 교사도 늘고 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울려대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카톡’에 시달리다 결국 SNS를 이용한 소통을 포기하는 것이다. 교권의 추락으로 학부모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담임교사를 초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진다. ‘단톡방’에서 빠져 나가도 학부모가 돌아가며 초대하는 ‘카톡 감옥’까지 경험하는 교사도 있다. 나이가 어린 초임교사들은 “학부모들이 친구 대하듯이 대화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교사 대부분은 ‘카톡 프로필 사진’에 가족사진을 일절 올리지 않는다. 학부모가 교사의 전화번호를 등록하면 자동으로 카톡으로 연결돼 사생활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많은 교사들이 ‘SNS 피로 증후군’을 호소하고 있다. 잦은 판서로 인한 각종 어깨질환, 성대질환, 하지정맥류 등이 대표적인 교사의 직업병인데 SNS 증후군이 새로운 직업병으로 등재될 태세다.

며느리들이 ‘시댁 단톡방 탈출법’을 공유하듯이 교사끼리도 ‘학부모 카톡 피하는 법’을 공유하며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학부모로 예상되거나 모르는 ‘카톡’ 친구가 뜨면 바로 차단을 시키거나 ‘카톡’으로 상담이나 문의가 오면 ‘카톡’으로 답장하지 않고 문자로 답장을 보내 대화를 단답형으로 유도하는 방법도 많이 쓰인다. 아예 ‘카톡’이 안 되는 폴더 폰을 추가로 구입해 학부모용으로 사용하거나 월 3천원을 더 내고 듀얼 넘버를 받아 카톡이 안 되는 번호를 학부모에게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학기 초에 ‘카톡’으로 상담이나 대화를 사절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교사도 많아졌다. 수업이 없는 빈 시간에 각종 공문을 처리하거나 수업자료 준비도 바쁜데 학부모가 끊임없이 ‘카톡’으로 대화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김영란 법’ 시행 전까지는 학부모가 ‘카톡’으로 커피, 케익 등의 선물을 보내는 바람에 “선물 보내기를 취소해 달라”고 실랑이를 벌이는 교사가 많았다. 끝내 보내기를 취소하지 않는 선물은 오랜 기간 방치하면 자동으로 환불되긴 하지만 환불되기 전까지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교사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일정한 위치에 오르면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갑질하려는 ‘최순실’ 같은 엄마들이 대한민국 어디에나 존재하는 탓이다.

반면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학부모 ‘단톡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학부모와 소통하는 교사도 있다. “직장에 다녀 학부모총회나 공개수업에 참석하지 못하는 학부모는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 메신저나 문자, 전화로 자신들이 궁금해 하는 사항이나 건의사항을 묻는 경우가 많다”며 “퇴근 후까지 학부모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장하는 것이 힘들지만, 같은 워킹맘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담임이 학부모 ‘단톡방’을 개설한 후 단톡방 규칙으로 일체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등의 답변을 못 달게 하고 학교생활 공지용으로만 사용한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라’는 속담을 실천하는 셈이다.

서울에서 30년간 교사로 재직하다 학부모와 학생의 등쌀에 올해 2월말 명예 퇴직한 한 교사는 “교직에서 남은 것은 환멸이요, 최근 몇 년은 교사 생활이 고통이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대한민국에서 최악의 직업 중에 가장 최악의 직업이 선생 노릇이다”고 회고한다. 교직사회에 환멸을 느껴 등을 돌리는 교사들이 많아지면 사회를 빛낼 인재들이 더 이상 학교에서 배출되기 힘들다. 교사라는 직업이 ‘인간을 가장 빛나게 만드는 직업’으로 영원히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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