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현 전 국민은행 지점장(현 KB미소금융재단 경영자문위원)

 

15년 전 연수 차 서유럽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봤다. 점심시간 전에 은행의 셔터가 내려가는 것이다. 정오 12시부터 1시간동안 점심시간이므로 은행도 잠시 영업을 중지한다고 한다.

이곳 은행원이 참 부럽기도 하고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 먼 세상이었다. 마침 우리가 있던 식당 옆 테이블에는 은행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우리 은행원들은 점심을 제대로 못 챙겨먹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40년간 은행생활을 해오며 금융산업도 말할 수 없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근로자의 삶의 질은 향상되어왔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은행원의 점심시간이다. 고객의 업무처리를 위해 옆 직원들과 교대식사를 하다 보니 식사시간은 고작 20분 정도이고, 창구가 바쁜 날이면 한 달에 3~4일 정도는 점심을 못 먹고 지나가는 일도 허다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위장질환으로 고생하는 은행원이 한둘이 아니다.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직원도 있고, 퇴직 후에는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기도 한다. 길게 보면 국가차원의 커다란 실이 된다.

물론 점심시간을 이용해 은행을 찾고자 하는 고객도 있다. 은행원의 점심시간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내부 자체적으로 조정 운영하면 고객의 불편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은행 영업시간 조정, 주 5일제 등도 시행 당시의 큰 우려와는 달리 잘 정착한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생명과 연계된 병원 역시 별도의 점심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금융계에 몸담았던 정치인에게 고언하고 싶다. 현재 금융업 근로자들의 위장병 등 건강상태를 파악해 보기 바란다. 은행원이 건강해야 금융의 미래가 보인다. 지금은 불필요한 대립보다는 직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국민의 삶과 질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은행원도 국민의 한 사람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은행원의 ‘점심 교대시간’이 아닌 ‘점심시간’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은행원뿐만 아니라 점심시간이 없는 대한민국 모든 근로자에게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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