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사회적 갈등과 투쟁을 제도화하고 그 과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 굳이 ‘정치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 수준이 높다는 것은 그 사회의 갈등과 투쟁의 방식이 상식에 가까우며 그런 상식이 ‘정의’를 구현하는 바탕이 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른바 ‘선진정치’의 모습이 그렇다. 특정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거나 특정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한 채 ‘그들만의 통치’를 일삼는 국가는 이미 ‘후진정치’에 다름 아니다. 상식은커녕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치꾼들이 그들의 ‘정치적 탐욕’을 위해 국정을 농단하는 국가에는 ‘정치’가 들어설 공간이 없다. 끝없는 반대와 대결 그리고 대치의 전선만이 더욱 선명할 뿐이다.

仙遊朽斧柯(선유후부가)

중국 진(晉)나라 때 왕질(王質)이라는 한 나무꾼의 얘기에서 나온 ‘선유후부가(仙遊朽斧柯)’라는 말이 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가 썩는 것’도 모르고 신선들의 바둑을 구경했다는 얘기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허망한 의제’에 매몰된 채 세월만 보내는 것을 꼬집는 말로 들린다. 어디 왕질뿐이겠는가. 우리 정치권을 보면 왕질의 얘기가 생각날 정도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절박한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는 탄식을 금할 수 없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출생과 사망자수 통계를 보면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수가 35만 7천여명으로 추락하고, 합계출산율도 1.05명으로 역시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는 소식이다. 출생아수가 40만명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통계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후 처음이다. 그리고 당초 예상치보다 19년이나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실질적으로 ‘국가적 재앙’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9%를 기록했다. 이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아르바이트 일까지 포함하는 체감 실업률은 22.7%로 나타났다. 다수의 우리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에겐 희망보다 절망이 더 익숙해 보인다. 집을 장만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라는 말은 입 밖에도 꺼내기 어렵게 됐다.

한편 부동산 시장은 난리법석이다. 자고나면 특정 지역 아파트 값이 1억원이나 올랐다는 얘기쯤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반면에 외곽이나 지방의 아파트는 찬밥 신세이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까지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국민적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매번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때뿐이다. 오히려 양극화만 더 심화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도 그랬다.

이런 가운데 지금 우리 정치권은 ‘6.13 지방선거’에 모든 관심이 집중돼 있다. 문제는 선거의 경쟁구도가 너무도 저급하다는 뜻이다. 또 ‘내 편과 네 편’의 편 가르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를 위해 다시 ‘종북좌파’와 ‘극우꼴통’의 이념 싸움이 재연되고 있다. 지방선거가 급하다고 해서 또 이런 식의 이념 싸움으로 몰고 가는 행태는 분노를 넘어 우리를 절망케 한다. 정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싸움질 하다가 ‘공멸의 정치’를 보고야 말겠다는 것인가. 다가오는 ‘대한민국의 재앙’이 정말 두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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