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고 애매모호하기만 해 혼란만 가중시켰던 남북대화 분위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듯하다. 남북대화에 올인 하던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금번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남을 계기로 남북은 물론 북미대화에도 가능성이 엿보이는 일련의 보도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던 문 대통령은 그동안 대화를 위한 대화라는 빈축을 의식한 듯 북측에 비핵화의지를 분명히 한 것 같다. 대화를 넘어 비핵화를 위한 방향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고무돼 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은 먼저 핵동결부터 시작해 추후 핵 폐기라는 ‘북핵 2단계 해법’을 의미한다. 물론 그 전 단계로 핵실험 중단이 선행돼야 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3단계가 된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결심은 남북 및 북미대화에 있어 비핵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논리를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그야말로 불가역적 현실임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북측 또한 수용했다는 사실에서 북측의 비핵화 내지 한반도 정세는 진전을 가져올 공산이 있어 보이는 것은 맞다.

분명한 것은 오늘의 현실을 이끌어낸 것은 미국의 속셈이 어디에 있든지 일관성 있는 대북압박과 제재가 일등공신이라는 사실과 다음으로 공세의 목적이 어디에 있든지 야당의 거센 공세가 만들어 낸 결과라는 점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남북관계가 있고 한미공조가 있고 국제관계 내지 질서가 있고 나아가 직면한 우리의 안보라는 현실을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 나가느냐다.

어렵게 일궈낸 대화 분위기에도, 미국은 “매우 거친 2단계가 준비돼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비핵화의 진정성을 체크하며 두고 보겠다는 반응으로 한발 물러선 듯하면서도 근본 방향에는 변화가 없어 보이며, 중국은 무조건 대화를 촉구하고 있으며, 일본은 한미일 공조의 틀이 깨질까 봐 심히 경계하는 분위기로 저마다의 속사정이 다르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찌 이뿐인가. 북한은 줄기차게 핵능력을 과시하며 미사일을 전진배치하고 있는 이중적 태도로 대화분위기가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이같이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평화통일의 길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뚜렷한 명제가 있다.

그렇다면 야당은 국정의 절반을 책임진 수권정당으로서 또 정치공세라는 불명예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이젠 나라와 국민과 미래를 위해 건전한 방향으로 협조할 것은 협조해야 한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지금까지는 싸울 때였다면 이제부터는 협조할 때다. 명분이 사라지고 때를 놓치면 맛을 잃은 소금같이 그야말로 버려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더 심각한 것은 여당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꼭두각시·로봇·아바타의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조건 지지하고 옹호하는 게 여당의 역할이 아니다. 현재 여당이 그토록 비난했던 과거 정권에서도 오늘의 여당처럼 거수기와 나팔수가 되지는 않았다. 문정부 인사의 난맥상을 보고도, 좌편향적이고 포퓰리즘적 정책을 보고도, 정부 내각이 무시된 청와대의 획일적이고 독재적 정책을 보고도 비판하지 못하고 대변인 역할만 하는 여당은 존재가치가 없다.

심지어 지구촌이라 하듯, 세계가 이웃이 된 현실에서 그 어느 때보다 외교 파트의 중요성이 대두되건만, 모든 사안은 청와대 주도로 이뤄지고 외교부와 수장은 심부름하는 도우미 역할로 전락해도 여당은 보고만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 야당이 그토록 반대하던 외교수장을 고집과 아집으로 임명한 이유가 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지나치게 지지도를 의식하고 의지하는 듯하다. 이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하다. 지지와 인기라는 건 밀물과 썰물같이 밀려왔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허무한 것이라는 걸 애써 외면하고 싶을 게다.

요즘 ‘팬덤’ 내지 ‘팬덤 문화’가 대세다. 이는 유명인(스타) 또는 특정분야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이나 무리를 뜻한다. 이 같은 팬덤 문화는 연예인을 넘어 정치인들에게도 영향을 가져왔고, 특히 오늘날 문재인 정부에겐 하나의 올무가 된 것 같아 안타깝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인을 지지하는 모임으로 시작해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팬덤은 노무현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노무현 정권의 위기를 안겨준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이처럼 팬덤의 본래 취지는 순기능적 역할을 담당하므로 긍정의 면이 강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팬덤은 이기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이율배반적이고 폭력적이고 공격적이고 편협적인 문화의 온상이 돼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여당마저도 이 팬덤의 눈치를 봐야 살아남는다는 인식을 갖게 함으로 정부 견제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식물 여당으로 전락했다.

이제 팬덤의 순기능은 사라지고 여론몰이와 마녀사냥 같은 인민재판식 정치사회문화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이 같은 문화의 역기능이 문정부의 국내 정세와 한반도 정세 내지 국제 정세를 오판하게 하고 어렵게 하는 첩경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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