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이 올해도 많은 숙제를 남기고 지나갔다. 국민들이 1년 중 가장 많은 스트레스와 장시간 운전, 고비용을 들이는 행사로 민족 최대라면 맞다.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묵은해를 보내고 맞이한 한 해의 첫날을 뜻한다. 음력으로 아무리 새해 첫날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양력 1월 1일을 첫날로 인식한다. 1월 1일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고 인사하고, 설날이라고 한해가 한참 지난 2월에 다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고 인사를 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좋은 게 좋은 것이지’라고 치부하긴 참 애매모호한 인사다.

필자와 같은 50대의 동년배들도 젊은이 못지않게 명절증후군,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다. 자녀나 며느리가 편치 않은 마음으로 명절을 지낸다는 기사를 읽으면 부모도 마음이 안 좋다. ‘설날에 부모에게 세배하는 도리는 가르쳐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모르는 척 하지만 자녀들이 힘들어 하는 귀성을 명절마다 요구하는 것은 부모로서도 못할 짓이다. 민족대이동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액수의 비용과 스트레스 등 사회적 비용이 ‘명절을 지키기 위한 비용 치고는 지금 시대에는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추석부터 명절을 보이콧 할 생각이다.

30~40년 전 일가친척이 한 동네에 모여 살 때는 설날이 미풍양속이었다. 먹을거리를 서로 나누고 윷놀이를 하며 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지금은 명절 때 차로 5~10시간 이동하는 자체부터 스트레스고 낭비다. 이동하느라 육체적으로 힘들고 명절 비용에 허리가 휜다. 명절 스트레스로 고부 간, 부부 간 불화가 깊어져 이혼율이 증가한다. 과하게 만들어 버려지는 음식도 많고 이만저만 시대에 뒤떨어지는 악습이 아니다.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 까다로운 차례상 차리기가 왜 그렇게 중요한 건지 양반 가문에 묻고 싶다. 조상을 기리며 덕담을 나누는 것에 의미를 두고 차례상, 제사상은 식구들이 둘러 앉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음식만 준비하고 허례허식을 버려야 한다.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제사문화 탓에 얼마나 많은 어머니, 누나, 며느리, 딸들이 희생되었는가? 시대가 변해 불합리한 관습으로 여겨진다면 시대에 맞게 바꿔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제사도 남편 직계의 제사에는 남편과 아이들만 참석하고, 아내의 제사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참석하면 편하다. 굳이 살아생전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남편의 조상을 위한 제사에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스트레스 받으며 참석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명절에 모이게 되더라도 아침식사 한 끼만 먹고 바로 헤어지자. 그래야 며느리도 친가에 가 딸 행세를 한다. 딸은 친정으로 빨리 안 보낸다고 사돈 욕하면서 며느리에게는 “오후에 시누이 오면 같이 밥 먹고 가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명절에 아버지, 아들은 TV보며 밥상을 받고 엄마, 며느리만 음식 준비를 하는 것도 비정상이다. 심지어 며느리 혼자만 준비하도록 하는 집은 뻔뻔하기까지 하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명절이 아니다. 부모도 행복하고 자식도 행복하고 며느리나 사위도 행복해야 명절이다. 누군가에게 불행을 안겨주고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면 명절을 바꿔야 한다.

차라리 명절에는 각자 가정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지내는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다. 남편은 남편 집으로, 아내는 아내 집으로 가 오랜만에 자기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아이들은 한 해씩, 또는 추석, 설을 번갈아가며 친가, 외가를 가면 된다. 오랜만에 식구들끼리 모이면 스트레스 받는 사람도 줄고 즐거움은 더 커질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명절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관심에서 시작된다. 아내의 힘든 점을 남편이 이해하고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하고, 시댁에서는 며느리를 가족이 아닌 한 집안의 딸로 존중하면 된다. 가족 간에도 잔소리와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은 삼가야 한다. 서로 칭찬하고 위로하며 슬기롭게 명절을 보내야 한다.

민족 최대의 명절에 초점을 맞춰 설의 유래, 차례상 차리기, 전통 놀이만 가르치는 학교 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 며느리와 여자들의 노동을 당연시 여기고 희생을 강요하는 문제,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잘못된 행태, 며느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여성으로 자존감을 찾는 교육이 필요하다. 명절 차례상 준비를 여자만 하는 ‘성 역할 고정관념’에 대해 토론하고 양성평등 교육을 강화하면 명절의 많은 문제가 사라진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