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이천호국원 현충과 박종일

 

다가오는 3월 1일은 3∙1운동 99주년을 기념하는 3∙1절이다. 3∙1운동은 일제에 항거해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우리 민중들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린 독립운동이다.

1905년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는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고 1909년 기유각서로 경찰권과 사법권을 박탈했으며, 마침내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을 강제로 체결·공포해 국권을 침탈했다. 이후 헌병 경찰을 통한 강압적인 무단 통치를 자행한 일제에 대항해 국내·외 지식인 및 종교인들은 파리강화회의 참석, 무오독립선언, 2·8 독립선언 등으로 독립 의지를 다졌으며, 민중이 함께 참여하는 독립만세운동을 구체화했다.

1919년 2월 천도교를 중심으로 각계의 지식인들은 독립선언서를 완성하고 배포를 위한 준비를 진행했으며, 3월 1일 태화관에 모인 민족 대표 33인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외친 뒤 자진 체포됐다. 당시 학생 대표였던 강기덕 선생 등은 이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받아 탑골공원에 모여 있던 민중들에게 배포했고,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규모의 만세 운동이 시작됐다.

3∙1운동은 이후 국내외 곳곳에서 이뤄진 만세 운동으로 발전해 민중들의 자발적 독립의식을 고취했고,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2개월 가까이 지속했으며, 조직적인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독립 정부의 필요성을 대두시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하는 데 초석 역할을 했다. 이는 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라고 명시돼 대한민국 건국이념의 바탕을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통치에 고통받는 국가들에 민중이 주체가 되는 독립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민족주의 해방운동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처럼 중요한 3·1운동의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 3월 1일에 독립선언기념일이라는 명칭으로 기념식을 거행했으며, 해방 이후 1946년 국가 경축일 지정을 거쳐, 1949년 10월 국경일로 제정돼 3·1절로 정식 명명됐다.

올해 99주년을 맞는 3·1절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기념식을 개최하고, 만세운동이 있었던 지자체와 해외 공관 등에서도 만세운동 재현 행사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국가보훈처는 생존하신 독립유공자분들에게 예우를 다하고,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임시정부 기념관의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3·1절을 단순한 공휴일로 맞이하기 보다는 3·1운동의 의미를 아직 생소하게 여길 수 있는 청소년들과 함께 기념행사에 참여하거나, 기념식을 시청하고 가정에 태극기를 게양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의 총칼 앞에서 만세를 외쳤던 분들께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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