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을 주 메뉴로 한 다양한 쌀 간편식.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한국인의 주식이자 농촌의 주 소득원이었던 쌀이 홀대를 받고 있다. 풍년이 들어도 농민들의 근심은 쌓여만 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75.8kg이다. 10년 전보다 1인당 연간 쌀 23.4kg을 덜 먹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올해 쌀 재고량은 지난해(100만 톤)보다 40% 늘어난 14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07년(70만 톤)의 2배에 달하는 물량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쌀이 무한변신을 하면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에서도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쌀 용도의 다양화와 수요창출을 위해 가공식품· 기능성 품종개발 등을 강화하고 있다. 쌀시장의 새로운 바람이 불면서 쌀 막걸리 고추장 빵 카레 등 다양해진 먹거리는 소비자들의 미각을 유혹하고 있다.

빵이나 국수 떡 라면 시리얼 등 대체식품 소비가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쌀(밥)이 아니면 식사가 아니다’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한국인은 왜 쌀을 먹어야 하는 것일까. 선사시대부터 우리와 함께한 쌀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 쌀이 되기까지 농부의 손을 88(八十八)번이나 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쌀 미(米)에도 나타나 있듯 쌀은 농부의 땀 흘린 대가로 우리 밥상에 오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쌀’의 어원
쌀은 볍씨를 파종해 가을에 수확을 한 벼에서 껍질을 벗겨낸 알맹이를 말한다. 쌀이 되기까지 농부의 손을 88(八十八)번이나 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쌀 미(米)에도 나타나 있듯 쌀은 농부의 땀 흘린 대가로 우리 밥상에 오른다.

쌀의 어원은 ‘씨알’의 줄임말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씨(種)의 옛말과 알(粒)의 옛말이 합쳐져 ‘쌀’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멥쌀 찹쌀 입쌀 보리쌀 수수쌀 기장쌀 등에도 쌀이 공통으로 쓰인 점을 보면 ‘씨의 알맹이’ 알곡이라는 뜻을 갖는다는 말이다.

벼의 원산지가 인도라는 점을 들어 고대 인도에서 쌀을 뜻했던 사리(sari, 산스크리트어)가 우리말 쌀의 어원이라는 견해도 있다. 또 다른 주장은 쌀은 먹으면 살(肉)이 되고 사람이 살아(生)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양식이기 때문에 ‘살’이 ‘쌀’이 됐다는 견해다. 이는 한국인이 쌀을 가장 귀중한 양식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 한국인의 입맛 사로잡은 쌀의 역사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쌀을 먹었을까? 쌀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배경과 관련된 여러 설 가운데 약 6~7000 년 전 인도 동북부 지역에서 중국 운남과 북동쪽 양자강, 황하 유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북쪽에서 들어온 벼농사는 남부로 파급되면서 벼의 생육조건이 좋은 영남·호남지방에서 특히 발달했다.

우리 조상들이 쌀을 먹기 시작한 것은 약 3000년 이전인 신석기시대로 추정되고 있다. 그동안 벼를 수확하는 반달돌칼이 발견된 청동기시대가 벼농사가 시작된 점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했지만, 1991년 김포 가현리에서 발견된 5000년 전 볍씨들은 신석기시대에 벼농사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특히 198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구석기 유적의 토탄층에서 발견된 탄화미는 1만 3000년 이전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이 탄화미는 2000년 말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에서도 가장 오래된 볍씨로 인정받았다. 이 볍씨는 5000년 전 인도 동부지역에서 재배됐던 벼의 유전정보와 70% 정도 유사해 1만 년 전인 신석기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야생벼를 채집해 먹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 ‘말’은 당시 곡물의 부피를 계량하던 도구이다(왼쪽). 둡다리가 달린 접시로 삼국시대 주로 만든 토기에서 볍씨가 발견됐다(오른쪽). 우리나라의 농업발달사를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농업박물관에 소개돼 있는 도구와 유물들. (촬영협조: 농업박물관) ⓒ천지일보(뉴스천지)

삼한시대에는 논벼 재배를 위한 용수 확보를 위해 대규모 저수지(김제 벽골지)를 축조하는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 벼농사를 보급하고 장려했다.

삼국시대에는 쌀이 밥의 주된 재료로 사용됐고 통일신라시대부터는 곡식 중 제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통일신라시대의 주식 유형을 보면 북주는 조, 남부는 보리, 귀족층은 쌀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쌀이 화폐로도 사용됐고 물가 기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서민까지 쌀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조선시대부터다. 이 시기에 권농정책이 활발하게 추진돼 쌀 생산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쌀 중심의 식단으로 전환된 뒤에도 자급이 원활했던 건 아니다. 보릿고개, 혼식 장려, 도시락 잡곡 검사 등은 쌀이 귀하던 시절을 대변하는 말이다. 1970년대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쌀은 비로소 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우리나라 벼농사 지역에는 관개용 수계를 중심으로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형성됐으며 서로 협력해 공동작업을 하는 ‘두레’라는 독특한 협동체가 있다.

벼농사처럼 손이 많이 가고 재배하는 과정에서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농경생활에서는 타인과의 협동은 필수적이었다. 물 관리를 위한 용수원 및 수로 개발 등 수리시설의 확충은 물론 파종, 모내기, 벼베기 등의 농사일 또한 마을의 공장작업으로 이뤄졌다. 이런 협동체가 오늘날에도 계승돼 공동 구입, 공동 판매체인 협동조합으로 발전한 셈이다.

◆ 속담, 관형표현 속 ‘쌀’
우리 민족이 벼농사를 시작한 이래로 쌀은 단순한 먹거리 의미를 넘어 우리 민족의 신앙이고 화폐였으며 정신적 뿌리이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쌀 한 그릇과 정화수를 떠놓고 며느리의 임신과 순산을 빌었다. 가정의 뒤울 안에는 성주단지를 만들어 놓고 해마다 흰쌀을 갈아 담아 넣으면서 풍년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했다. 인생을 마간하는 자리에도 시신을 염습하기 직전에 버드나무 젓가락으로 세 번 떠 먹여서 배고프지 않고 저승까지 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식문화와 생활양식이 녹아든 속담이나 관용표현 등은 한국인과 ‘쌀’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누룽지와 눌은밥은 우리 특유의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밥의 존대표현인 ‘진지’라는 단어가 있고,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상대를 만나면 흔히 하는 인사가 “진지 잡스셨습니까”였다.

사람의 죽음을 두고는 ‘밥숟가락 놓다’라고 사용했다. 우리 조상들은 밥을 생명 그 자체로 여겼다. 직업도 우리는 ‘밥줄’이라고 한다. 직장을 잃게 되는 것을 ‘밥줄 끊어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밥은 명약으로 비유해 밥 자체가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뿐 아니라 밥은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에도 사용된다.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면 ‘밥맛 떨어진다’고 하고 반대로 외양이 말쑥하고 똑똑한 상대에게는 ‘씻은 쌀알 같다’고 표현한다.

부정적인 의미로 ‘밥’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매우 화가 나거나 비위에 거슬리면 ‘밥알이 곤두선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잘 해내지 못할 경우 ‘밥값도 못한다’고 한다. 일하지 않고 놀고먹기만 하는 사람은 ‘밥벌레’ ‘밥도둑’이라고 부른다.

쌀로 지은 밥은 맛이 담백해 매일 먹어도 싫증나지 않고 떡이나 술 등 다양한 종류의 식품을 만들기에도 적격이라 한국인의 주식으로 오천년의 역사를 함께해 왔다.

특히 쌀은 모든 곡물 중 가장 훌륭한 탄수화물의 공급원이면서도 여러 영양소들이 이상적으로 배합된 주식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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