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雨水) 지나고

조명제
 

봄이 온다고
은하의 모래밭에는
쑥잎 돋는 봄이 온다고
낯익은 듯한 새가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지저귄다.
우수 갓 지난 무렵의 골목 끝
하늘을 보니 생각나다.
앵두나무 가지 너머
우리의 아픈 별 지구에도
봄이 온다는 것이.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봄날은
기적처럼 온다는 것이.
 

[시평]

엊그제 입춘(立春) 지나, 또 우수(雨水)가 지났다. 눈이 비로 바뀌어 내리고, 그 빗물에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른다는 의미의 우수. 24절기 중 두 번째 맞는 절기이다. 그래서 겨우내 꽝꽝 얼어 있던 대동강(大同江)이 녹는다는 절기, 우수. 엄동의 겨울도 허연 수염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을 슬슬 풀어내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 맞을 봄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우수가 갓 지난, 그래서 햇살이 다소는 따사로워진 듯한 그 무렵의 길목에 서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면, 저 멀리 우주의 어디 작은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을 듯한, 또 하나의 별, 지구. 그 지구에도 봄은 찾아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기적과 같이, 언제까지 버티고 있을 듯한 그 엄동의 겨울은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고, 봄은 그렇게 우리의 곁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수절이 지나고 나면, 어딘가에는 여릿여릿한 쑥들이 새잎을 돋우고, 아니 낯익은 듯한 작은 새 한 마리 창가에 찾아와 지저귈 듯한, 그러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봄눈 녹아내리는 골짜기, 골짜기마다 피어날 새봄, 그 꽃에의 희망을 안고, 새로운 한 해 준비에 왠지 몸과 마음이 바빠만진다.  

-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