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한국은 전쟁의 폐허로 또 대물림으로 너무나도 가난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경제성장을 대 모토로 삼고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와 함께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의 경제대국이자 세계인의 눈에는 성장의 심벌이 됐다. 그래서 ‘배우자 한국을… 배우자 한강의 기적을…’ 등이 이젠 한국 대신 세계인의 이슈다.

성장일변도의 정책과 국민의 의식은 결국 성장을 일궈냈다. 이젠 얻은 것이 있다면 잃은 것은 없는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경제성장의 그늘에서 민주주의를 잃었었다.

그러나 이젠 적어도 자유가 없어 할 바를 못하는 미개한 나라는 아니다. 그렇다면 잃었고 아직까지 찾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와 문화다. 곧 정신이며 얼을 잃은 것이다. 결국 우리의 생각과 의식과 가치관을 잃었으니 자아(自我)를 잃어버린 것이다.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이며, 독특하며 아름다운 것이며, 가장 품격 있는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아오기만 했다. 이 같은 사실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며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한 사람은 오늘도 한국인의 발견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리고 외치고 또 호소하고 있다. 사실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그 자체 바로 독일계 한국인 이참(한국관광공사) 사장이다. 그는 그의 저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답답한 나라 한국>이란 책을 통해 한국 즉, 자기의 나라 한국에 대한 애틋함과 간절함이 녹아 있는 ‘답답한’이란 수식어로 역설하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외적 요인으로 인해 정작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음을 지적하는 자서전이다.

또 일전에 칼럼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 정말 기억하고 싶고 알리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선교의 목적으로 방한한 독일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에 관한 얘기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1970년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 지하실에서 1940년 나치정권에도 살아남은 한 편의 귀한 영화필름이 발견됐다. 베버 신부가 1911년 1차 방문 시 엮은 책을 기초해, 1925년 2차 한국 방문 시 전국을 찾아다니며 직접 제작한 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다.

이 필름에는 우리 선조들의 삶이 놀라우리만큼 자세히 담겨 있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한국의 문화와 정신은 풍전등화(風前燈火)였다. 베버 신부는 그 마지막 순간을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의 신분으로 역사에 아니 한국인의 후손들에게 전해 주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한국의 문화를 구했고, 이 후 세대를 위해 필름은 보존되었던 것이다.

그는 필름을 통해 한국에 대한 사랑을 ‘내가 그렇게 빨리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그는 영사기에 자신을 직접 담아 한국을 소개하기를, 지정학적으로 서방의 이탈리아와 유사한 반도적 지형을 칠판에 분필로 써가며 소개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서울 한복판의 실개천이 흐르는 모습, 원각사, 베오개 시장(지금의 동대문 시장), 금강산 등 한국의 자연, 풍습, 문화를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다. 거대한 일본의 신 문명 앞에 유구하고 독특하며 찬란한 문화유산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는 열심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사진과 영상을 찍고 돌렸던 것이다.

그는 또 한국인을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그 자연을 뒤로한 채, 맑은 미소를 머금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하며 ‘한국인들은 자연을 정복하기보다는 그 찬란함 속으로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독일은 숲에서 뛰어 다닐 때, 한국은 고도의 문화를 가졌다고 생각한다’고 하며, 그 중 하나가 효도, 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 내려오는 복종과 순종, 권위에 대한 반항 대신 인정, 조상에 대한 숭고함의 예를 표하는 민족이라며 그는 한국의 가족과 자연과 풍습을 쉴 새 없이 카메라에 담았던 것이다.

결국 그가 발견한 것은 한국의 전통문화 속에는 ‘기도하고 일하라’는 평생 선교를 통해 가르쳐 왔던 신앙의 정신이 바로 한국의 전통문화 즉, 농경문화, 장례문화, 놀이문화, 전례종교문화 그리고 한국인의 심성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발견케 된 것이다.

세계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종교적 색채를 이미 한국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문화는 머금고 있었음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를 가진 나라는 이미 나라를 빼앗기고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영화를 사랑의 기록이자 연민의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결국 그는 일제에 의해 사라지고 묻힐 이 엄청난 사실을 온몸으로 지켰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자아를 발견케 하는 귀한 선물로 남겨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을 사랑하고 아낀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를 영원히 잊질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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