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많던 ‘우리말 땅이름’ 왜 사라졌나”
[인터뷰] “그 많던 ‘우리말 땅이름’ 왜 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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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가 우리말 땅이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0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가 우리말 땅이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0 

인터뷰|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

후삼국, 고려시대 거치면서 한자의 소리 읽게 돼

대한민국, 한양, 한강의 ‘한’은 우리말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탄항리(灘項里)는 ‘여울목’, 이포리(梨浦里)는 ‘배개’라 불렀죠. 우리말 땅이름, 참 아름답죠?”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는 “우리말 땅이름을 부르는 게 당연하지만, 다른 문명권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처음에는 한자의 뜻을 땄을 경우 뜻으로, 소리를 땄을 경우 소리로 읽었지만 후삼국과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한자의 뜻을 땄든 소리를 땄든 표기된 한자의 소리로 읽는 습관 때문에 우리말 땅이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 한양, 한강의 글자 안에 들어간 ‘한’자가 우리말 땅이름이며, 소리가 같은 한자인 ‘韓(한)’과 ‘漢(한)’으로 표기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삼한’에서 따온 대한민국 ‘한’

이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한(韓)은 2천년전 ‘마한·진한·변한’을 합해 하나로 부르던 ‘삼한(三韓)’이란 이름에서 따왔다. 한이 어떤 뜻인지를 기록한 문헌은 없다. 다만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으뜸·우두머리란 뜻의 우리말을 비슷한 소리의 다른 한자로 기록한 간(干)․한(翰)․한(邯)․한(旱)․고(告)․찬(飡)․금(今)이 많이 발견됐다.

이 학예연구사는 “삼한에서의 ‘한(韓)’도 같은 뜻을 비슷한 소리의 다른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며 “‘한’을 ‘금(今)’으로 표기한 ‘이사금(尼師今)’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 임금이란 이름에도 2천년의 역사가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라시아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칸’도 우리나라 문헌에 간․한․고․찬․금 등으로 기록된 으뜸·우두머리라는 뜻으로 한자로는 비슷한 소리의 ‘성길사한(成吉思汗)’이라고 적었다.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도 자신을 ‘카칸’이라 부르고 한자로는 대한(大汗)이라 적었다.

한은 ‘크다’라는 형용사로도 사용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길’을 한길이라고 했고, ‘큰 내’를 한내, ‘큰여울’을 한여울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자의 뜻을 땄건, 소리를 땄건 표기된 한자의 소리로만 읽는 습관으로 한길은 대로(大路)로, 한내는 대천(大川), 한천(漢川) 등으로 불렀고, 한여울은 대탄(大灘), 한탄(漢灘) 등으로 불리면서 ‘크다’라는 뜻의 우리말 ‘한’이 일상생활과 땅이름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됐다.

이 학예연구사는 “대전광역시의 대전의 우리말 땅이름은 ‘한밭’이었다”며 “이를 한자 큰대(大)와 밭전(田)의 뜻을 따서 대전(大田)이라 표기한 후 한자 소리를 따라 부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은 ‘크다’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큰여울’을 ‘한여울’이라 불렀다. 그러다 한자를 소리로 읽는 습관으로 대탄(大灘) 등으로 불렀으며 지도(왼쪽)에도 이같이 표시했다. 한내는 대천(大川), 한천(漢川) 등으로 불렸다. 지도(오른쪽)에는 대천면, 대천리가 표시돼 있다.(제공: 국립중앙도서관 이기봉 학예연구사)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0
‘한’은 ‘크다’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큰여울’을 ‘한여울’이라 불렀다. 그러다 한자를 소리로 읽는 습관으로 대탄(大灘) 등으로 불렀으며 지도(왼쪽)에도 이같이 표시했다. 한내는 대천(大川), 한천(漢川) 등으로 불렸다. 지도(오른쪽)에는 대천면, 대천리가 표시돼 있다.(제공: 국립중앙도서관 이기봉 학예연구사)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0

 ◆한양·한강의 ‘한’도 역사 담겨

이 학예연구사는 ‘임금이 사는 성’도 ‘한’과 소리가 같은 한(漢)을 빌려 한성, 한산, 한산성 등으로 표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한성, 한산, 한산성이 있는 상태에서 북쪽에 ‘임금이 사는 성’이 또 하나 축조된다면 ‘북한산’ 또는 ‘북한산성’으로 쓸 수 있다.

고구려 장수왕이 서울을 점령한 북한산군이라 했고 이후 통일신라의 경덕왕 때인 759년 이곳은 한양(漢陽)이라 불리게 됐다. 그는 “한양은 대한민국의 한(韓)처럼 으뜸, 우두머리, 임금이라는 뜻이 담겨 2천년 역사의 우리말 땅이름”이라고 말했다.

오늘날에야 한강의 이름은 발원지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본류 전체를 가리키지만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기록된 한수 또는 한강은 한성, 한산, 한산성, 북한산성 등이 있는 구간에서만 불렀다고 한다.

◆서라벌에서 유래된 서울 지명

전통시대 수도는 ‘임금이 사는 도시’를 가리켰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의 수도가 달랐다. 200여년간 통일신라시대가 지속되면서 백제와 고구려의 수도 이름은 백성의 기억 속에 지워져 갔다. 현재의 경주 지역인 서벌은 ‘임금이 사는 도시’가 됐다.

고려를 거친 후 조선시대에 수도는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겼고, 공식명칭은 한성부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임금이 사는 도시’인 서벌이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서블→셔울→서울’로 소리가 바뀌게 됐고 해방 후 서울이 공식행정 단위의 이름으로 채택됐다.

이 학예연구사는 “최근에는 도로명 주소가 시행되면서 사라졌던 우리말 땅이름의 일부가 채택되는 경우가 있지만 아직도 표기된 한자의 소리를 계속 읽는다”며 “우리말은 정겹게 들리고, 매우 쉽다. 우리 역사성도 살아있기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을 지켜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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