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상화가 태극기를 들고서 눈물을 흘리며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18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상화가 태극기를 들고서 눈물을 흘리며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빙속여제’ 이상화(29, 스포츠토토)가 18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여자 빙속 역사를 또다시 새롭게 써나갔다. 밴쿠버와 소치대회 금메달에 이어 3회 연속 메달 획득이다.

빙속 여자 500m에서 3회 연속 포디움(시상대)에 선 선수는 독일의 카린 엥케(1980년 금·1984년 은·1988년 동)와 3연패를 달성한 미국의 보니 블레어(1988년 금·1992년 금·1994년 금)에 이어 이상화가 3번째다.

이상화가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처음 출전한 2006토리노올림픽에서 5위를 기록하면서다. 이상화의 이 같은 등장은 김윤만(45), 이규혁(40), 이강석(33) 등 남자 빙속에서만 세계무대에서 그나마 대등하게 맹위를 떨치던 것에서 벗어나 여자 빙속에서도 올림픽 메달의 길이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가능성을 보였던 이상화는 결국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서서히 정상궤도를 향해 갔다. 2010밴쿠버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열린 동 대회에서도 종합우승을 차지해 밴쿠버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기대케 했다.

밴쿠버올림픽에서는 강력한 우승후보 예니 볼프(39, 독일)가 버티고 있었다. 예니 볼프는 2007년 세계신기록을 수립해 이상화가 2013년 이를 깨기 전까지 기록을 갖고 있었던 여자 단거리 최강자였다.

이상화와 볼프는 밴쿠버올림픽 500m에서 1, 2차시기 모두 같은 조에 편성돼 불꽃을 튀었다. 1차시기에서는 이상화가 38초 24로 통과하면서 예니 볼프(38초30)를 0.06초 차이로 이기고 1위로 마치며 메달의 기대감을 높여갔다. 이어 진행된 2차시기에서도 함께 레이스를 펼친 둘은 더욱 빠른 스퍼트를 펼쳤고 이번에는 예니 볼프가 37초 84로 37초 85의 이상화보다 0.01초차 먼저 결승선을 끊었으나 합계 기록에서는 이상화가 0.05차로 앞서면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이같이 한국 여자 빙속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한 이상화는 이후 2010-11 시즌에는 부진했으나 그 다음 시즌 재기에 성공한 뒤 2012-13시즌에서는 500m 8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독보적인 레이스로 ‘빙속 단거리 여제’로서 입지를 굳혔다. 2012-13시즌 1차월드컵에서 36초 80으로 세계신기록을 최초로 자신이 세운 뒤 2차월드컵에서 35초 57로 잇따라 세계신을 경신했다. 2013-14시즌 2차월드컵에서는 36초 36으로 다시 한 번 세계신기록을 세워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2014소치올림픽에서는 경쟁자가 없었다. 1차시기부터 압도적인 레이스로 37초 42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고, 2위와는 0.15초 차이로 일찌감치 금메달을 예고했다. 2차시기에서는 더 거침이 없었다. 이번엔 37초 28로 재차 올림픽 신기록을 경신했고, 합계 74초 70의 기록 역시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이상화의 여자 500m 2연패는 3연패의 보니 블레어(미국), 캐나다의 카르리오나 르메이돈(1998·2002년)에 이어 역사상 3번째다.

이상화의 도전은 계속됐다. 그러나 무릎 부상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32)의 돌풍은 이상화의 3연패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밴쿠버대회 12위, 소치에서 5위로 마감했던 고다이라는 2014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 2차대회에서 이상화를 밀어내고 처음으로 월드컵 정상에 오른 것을 기점으로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고다이라는 2016~17시즌부터 2017~18시즌까지 치른 15개 월드컵 레이스를 모두 휩쓸었고, 500m와 1000m에서 모두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켰다. 성적만 놓고 보면 마치 소치대회 당시 이상화의 상승세 못지않은 무서운 페이스를 보였다.

8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상화(왼쪽)가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운데), 동메달을 차지한 체코의 카롤리나 예르바노바와 함께 시상대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8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상화(왼쪽)가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운데), 동메달을 차지한 체코의 카롤리나 예르바노바와 함께 시상대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번 평창대회에서는 500m 경기가 두 번의 레이스를 합쳐 순위를 매겼던 이전 올림픽과 달리 단판 레이스로 바뀌었다. 운명의 대결은 딱 한 번뿐이었다.

그만큼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기에 이상화의 부담도 컸다. 더구나 바로 앞에서 레이스를 펼친 고다이라 나오(32, 일본)가 36초 94의 기록으로 이상화가 세운 올림픽 신기록을 36초 94로 올림픽 신기록까지 세워 부담을 가중시켰고 불리한 아웃코스 스타트 레인 배정까지 받았다. 과거 이상화는 아웃코스 스타트를 선호했으나 무릎 부상과 종아리 통증에 시달린 뒤에는 인코스 스타트를 선호했다.

그럼에도 이상화는 100m를 고다이라 나오보다 0.06초차로 앞서며 역주를 펼쳤다. 그러나 이상화는 마지막 곡선주로에서 기록을 의식해서인지 살짝 삐끗하며 결국 2위로 통과해 대회를 마감했다.

1000m 출전까지 포기하며 의욕을 불태웠던 이상화였으나 늦은 나이에 절정의 기량으로 뒤늦게 빛을 내고 있는 고다이라 나오의 벽은 역시 높았다. 일본선수단 주장인 고다이라 나오는 54년간 주장을 맡았던 일본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주장의 저주’ 징크스도 말끔히 이겨냈고, 일본 여자 빙속 최초로 500m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상화가 세계신기록을 연달아 달성하던 전성기 시절의 모습이 그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으나, 고다이라와 후회 없는 명승부를 펼쳤다.

이상화는 경기 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었다. 지난해 부상을 당한 뒤 기록이 잘 나오지 않았다.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1년 반이 걸렸다. 2등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추억이었다”고 아쉽지만 만족해했다.

비록 3연패는 무산됐으나 또 하나의 대기록을 세운 이상화는 아직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 올림픽까진 아니더라도 선수생활을 더 이어간다는 의사를 보였다. 부상을 말끔히 씻어낸 후 고다이라 나오와의 진검승부가 다시금 기다려지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상화가 19일 오후 강원 강릉올림픽파크에 위치한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며 웃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상화가 19일 오후 강원 강릉올림픽파크에 위치한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며 웃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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