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한국기술금융협회 IT 전문위원

 

켄타우로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인 상상의 수인(Beast-man) 종족이다. 몸에서 하반신인 말 부분은 태양에 속하는 남성적인 힘을 나타내며, 힘을 조절하고 다스리는 정신이 상반신을 이루는 사람 부분에 있다. 이 중 ‘케이론’이라는 켄타우로스는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들을 제자로 두었으며 의술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을 소생시켜, 저승의 신 ‘하데스’의 저주를 받고 죽임을 당했으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제우스는 케이론을 황도 12궁의 궁수자리로 만들었다. 이를 우리는 ‘켄타우로스 자리’라고 한다. 

1997년 5월 뉴욕에서는 당시 인간계 체스 최고수인 구 소련의 ‘카스파로프’와 IBM이 개발한 1000만 달러짜리 슈퍼컴퓨터인 ‘딥블루’와의 체스 대결이 열렸다.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보다 약 20년 전에 인간과 컴퓨터와의 대결이 벌어진 것인데, 이때 카스파로프는 딥블루에게 처음으로 패배의 아픔을 겪는다. 바로 전 해인 1996년 5승 1패로 승리를 거뒀던 ‘딥블루’에게 1년여 만에 패배를 당한 그는, 뼈아픈 이 패배의 경험을 토대로 인간과 기계사이의 협력이 인간의 창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이른바 ‘카스파로프 법칙’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약한인간+기계+뛰어난 프로세스의 조합은 어떠한 슈퍼컴퓨터보다 더 강하다”라는 것이다. 즉 앞으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인간과 기계와의 협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새로운 도구를 창조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기계보다 자신이 더 우위임을 증명하는 것은 기계 생산 자체의 의미를 반감하는 것이며, 오히려 인간 스스로의 진화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켄타우로스는 인간의 지혜가 동물의 힘과 융합하는 시너지로 신까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엄청난 괴력을 보유하게 됐다. 켄타우로스가 인간과 동물의 융합이었다면 이제는 ‘인간과 기계의 융합’ ‘인간 더하기 기계’를 통한 현대의 ‘켄타우로스’가 등장해 보다 획기적인 창조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것이 이른바 주장하는 ‘두뇌의 아웃소싱’이 될 것이다. 

인간을 정의하는 다양한 말 중 ‘호모사피엔스’는 ‘지혜를 가진 사람’을, ‘호모파베르’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인간이 다른 창조물보다 우월한 존재인 것은 도구를 만들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도구를 활용하면서 다른 생명체보다 더욱 생존 가능성이 높아졌고, 아울러 현재보다 더 개선되고 뛰어난 성능의 도구를 개발하면서 지속적으로 진화해 현재 문명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인간의 힘을 대체하거나 편의성 확대를 위한 개발 차원을 넘어서 연산 및 데이터를 분석하는 두뇌활동에 이르는 자동화기술이 대두되고 있으며, 인공지능 컴퓨터의 개발로 연산은 물론 기억과 인지까지 처리가 가능한 인공지능 컴퓨터가 만들어졌다.

저널리스트인 코리 닥터로는 컴퓨터를 통한 이 같은 두뇌의 아웃소싱을 ‘외장 뇌’로 부르면서 이 덕분에 축적된 수많은 정보를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했고 경험을 얻었으며, 더욱 풍성한 작품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두뇌 아웃소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데, 이른바 ‘휴대폰 분리불안 증후군’이나 디지털메모리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실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디지털 외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딥블루’에 의한 인간의 체스 패배, ‘알파고’에 의한 인간의 바둑 패배 이후, 오히려 이들 게임 수준이 이전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이것이 모방자이며 창조자인 ‘호모사피엔스’의 위대함이며, 인간 고유의 감정변화를 통제해 계산된 컴퓨터 데이터와 인간의 직관이 결합돼 무한한 창조가 이루어지게 되는, 컴퓨터와 인간 합작의 가상 ‘켄타우로스’가 그 위력을 발하게 하는 장을 끊임없이 만들어 주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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