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설특집] 탈북민 “꼭 살아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2018설특집] 탈북민 “꼭 살아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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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강은영 기자] 판문점 통일각에서 남북 실무자 회담이 이뤄지는 15일 오전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자유의 다리’ 위를 나는 새들이 북녘을 향하고 있다. 자유의 다리는 임진강의 남과 북을 잇는 통로로써 원래 경의선(京義線)의 철교였던 것을 도로교로 개조한 것이다.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함께 6.25전쟁의 비극을 상징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5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판문점 통일각에서 남북 실무자 회담이 이뤄지는 15일 오전 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자유의 다리’ 위를 나는 새들이 북녘을 향하고 있다. 자유의 다리는 임진강의 남과 북을 잇는 통로로써 원래 경의선(京義線)의 철교였던 것을 도로교로 개조한 것이다.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함께 6.25전쟁의 비극을 상징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5

북한에 가족 둔 탈북민의 설

“춤·노래, 즐거웠던 기억 나”

“통일 돼 다함께 명절보내길”

[천지일보=강병용 기자] “얼마 후면 북한에 계신 아버지 생신이신데 가족 생각이 많이 납니다. 항상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라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꼭 살아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일 탈북민 이영옥(43, 여)씨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설 명절을 앞두고 북한에 남은 가족들 생각이 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7년 전인 2011년 북한 함경북도 회령에서 중국을 경유해 들어와 탈북민으로 대한민국에 터를 잡았다.

당시 3살이던 아들 태민군을 데리고 탈북한 이씨는 명절에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더욱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가족사진 달랑 한 장만 들고 왔다. 처음 한국에 왔을 당시 가족을 이제 못 만난다는 사실이 많이 슬프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도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지만 매일 슬픔의 감정에 치우쳐 인생을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더 열심히 살기위해 노력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씨는 북한과 한국의 다른 명절에 대해 북한에서는 명절날 특히 신경 써서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한국처럼 평상시 잘 먹지 못하기 때문에 명절날 모든 친척들이 모여서 온 가족이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자고 여자고 없이 다함께 음식을 만드는데 추석이 아닌 명절에도 송편을 잘 해먹는 북한에서는 주로 떡을 빚고 절구질도 하면서 집에서 모든 음식을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남한에서는 명절이라도 옆집 이웃을 잘 만나지 않게 되지만 북한에서는 명절날 새벽부터 집안의 남자들이 동네에 계신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음식도 드리고 술도 따라드리면서 무병하게 오래사시라고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또 이씨는 “한국에서는 명절에 많은 가족이 자주 모이지는 않는다. 아파트의 층간소음도 그렇고 개인적인 프라이버시가 중요시 되다 보니 그런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 있을 때는 가족끼리 모여서 잘 놀고 윷놀이, 널뛰기 등의 오락도 많이 한다. 한국처럼 노래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돌아가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면서 “가족들이 기타치고 접시 두드리며 즐겁게 보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에 들어오고 7년이 지났는데 설날에는 아들과 쇼핑도 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영화도 보면서 보내고 있다”며 “모든 가족들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아들이 있어 덜 외롭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있다. 하루빨리 가족들과 다함께 보내는 명절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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