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선생님이 미치기 전에 하는 게 방학, 엄마가 미치기 전에 하는 게 개학’이란 말이 있다. 기나긴 1년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달콤한 겨울 방학 시즌이다. 학생들만큼이나 교사들도 방학을 기다린다. 학교 업무에 지치고, 학생들과 실랑이에 지치고, 수업준비에 방과 후 수업 지도에 각종 공문서를 처리하고 학부모 상담까지 하다보면 어느새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간다. 3월에 시작한 1학기가 절반이 지난 6월이면 ‘번 아웃’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교사들이 늘어난다. 겨우 겨우 버티다 7월에 들어서면 여름방학 생각에 다시 힘을 낸다. 방학은 교사들에게 희망이자 활력소인 셈이다.

방학이라고 교사들이 무조건 쉬는 건 아니다. 쉴 때 더 공부하고 밀린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방학 중에도 교사들은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지시되는 공문 처리나 방과 후 수업, 학생지도 등을 위해 수시로 학교에 출근한다. 아니면 원격결재 시스템을 이용해 재택으로 업무처리를 한다. 순번제로 돌아가며 당직근무도 선다. 주로 민원접수, 제증명서 발급, 방학 중 학생 관리, 봉사활동 지도 등의 업무를 한다. 보직교사(부장교사)인 경우는 학교에 나와 일하는 시간이 더 많다.

기본적으로 교사들은 1년에 60시간 이상의 연수를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받아야 한다. 연수시간을 못 채울 경우 성과급이나 승진 점수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교사들이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연수원에는 자신의 수업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도움 되는 직무연수를 받기 위해 수백개의 연수강좌가 늘 교사들로 만원이다.

겨울방학에는 업무분장을 짜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업무분장은 누가 어떤 부서에서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어떤 학년을 수업하고, 어떤 동아리를 맡아 지도하고, 담임은 몇 학년을 맡을지 등을 결정하는 일이다. 자신이 원하는 학년과 업무를 맡기 위한 교사들 간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업무분장 후 개학 전까지 배정 받은 업무의 준비와 수업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퇴직 전 필자에게 방학은 재교육의 시간이었다. 컴퓨터 활용 교육을 받기 위해 10여년간 방학 내내 쫓아 다녔다. 한글,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샵,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 프로그램 등 안 배운 컴퓨터 과목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 후엔 방학마다 다른 교사들을 연수 시키느라 10여년을 보냈다. 연수 교재 및 준비에 며칠, 강의를 마친 후 보고서 작성에 며칠 등 내가 가진 지식을 다른 교사에게 전파하는 데 방학의 1/3을 할애했다.

지금의 젊은 교사들도 연수과목만 다를 뿐 방학 내내 부족한 공부를 하고 자기 실력을 다듬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만큼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교사 스스로 부족함과 갈증을 많이 느낀다. 방학 중에 자기계발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개학하면 얼굴에 자신감이 넘친다.

다른 직장인들은 교사들이 방학에 마냥 놀고먹는 시간으로 오해한다. 심지어 친구들조차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다른 직종에 근무하다 교사가 된 사람들은 교사에게 왜 방학이 필요한지 절감한다. 교권침해로 힘들었던 일들, 무례한 제자에게 당한 수모, 학생들 간의 폭력, 성희롱, 성폭력 등을 한 학기 동안 수도 없이 겪는 사건으로 뇌가 받은 스트레스를 방학이란 시간을 통해 해소시켜야 한다. 방학에 해소하지 못하면 도저히 다음 학기에 학생을 대할 수 없다. 결국 해소되지 못한 교사의 스트레스는 교육의 질을 하락시키고 큰 병으로 발전해 그 피해는 학생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방학이 쉬지 않는 시간은 아니다. 사실 여유롭다. 학교에 출근해도 학생들이 있는 학교와 없는 학교의 차이는 심리적 부담에서 큰 차이가 난다. 방학은 가르침을 준비하는 시간이며, 배움의 시간이다. 여행을 가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연수를 받고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교사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고 조금이라도 수준 높은 수업을 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방전된 몸에 에너지를 채우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다음 학기나 다음 학년의 교육활동을 계획하는 정신적인 휴식 시간이다.

개학하면 다시 뇌에 엄청난 부하가 걸리기 시작하고 다음 방학이 돌아오기까지 서서히 교사들은 지쳐간다. 방학만이 교사들이 지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결코 방학은 교사에게 노는 시간도 특권도 아닌 그들이 병들지 않고 지치지 않고 살아가게 만드는 유일한 탈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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