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지방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당 지도부에서는 필승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광역단체장 예비후보 등록 개시일이 2월 13일로 닥쳐왔으니 원내정당 국회의원들은 저마다 경쟁력 있는 연고지의 시·도지사 출마를 선언했거나 출마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런 사정이다 보니 국회 제1당과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소속 의원들에 대해 선거 출마 자제를 요청하는 한편, 당내 경선을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비상한 관심 속에서 추이를 살펴보고 있는 바, 이는 지방선거 때 후보자 기호와 관련돼 있기 때문인 것이다. 

현재 민주당 원내의석은 121석이고, 한국당은 117석으로 4석 차이다. 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출마 선언 또는 출마 유력 지역으로 자체 경선으로 의원직 사퇴가 예상되는 지역을 보면 민주당은 서울을 비롯해 10개 지역, 한국당은 경북 등 영남권의 3석 정도로 민주당이 훨씬 더 많다. 현역의원들이 광역단체장 선거에 나서게 된다면 선거일 90일 전인 오는 3월 15일까지는 사퇴해야 한다. 현 상태에서 민주당이 민평당 의원에 대한 영입이 성사되지 않는 한 자칫하면 제1당과 제2당의 지위가 바뀔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될 경우 6.13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광역·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 후보들은 기호 2번을 차지하게 된다. 반면 한국당은 기호 1번이 돼 유리한 입장에 놓이는 바 이런 점을 민주당 지도부가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실시된 공직선거에서 선거기호 1번이 주는 프리미엄은 상당했다. 정치권에서도 이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제1당의 위치를 견지하려고, 이번 6.13지방선거에 출마 선언한 현역 국회의원들의 경쟁력과 상대당의 후보 동향을 철저히 분석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양당이 제1당 사수와 탈환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선거기호와 관련해 원외 정당과 무소속 후보 출마자들은 불공정을 호소하고 있다. 현 제도 자체가 선거의 공정성을 심히 위반하고 나아가 헌법상 평등의 원칙마저 짓밟고 있으니 하루 속히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투표용지에는 후보자의 기호가 1, 2, 3…번 순서로 게재하도록 돼있다. 이에 따라 이번 6.13지방선거에 나서는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지방의원들의 선거 기호가 정해진다. 즉 “후보자의 게재순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후보자등록마감일 현재 국회에서 의석을 갖고 있는 정당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 국회에서 의석을 갖고 있지 아니한 정당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 무소속후보자의 순으로 하고, 정당의 게재순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후보자등록마감일 현재 국회에서 의석을 가지고 있는 정당, 국회에서 의석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정당의 순으로 한다”(제150조 제3항)는 규정이 있다. 

현재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가칭 바른미래당으로 합당 진행 중이고, 또 민주평화당이 창당되는 등 변화가 예상되기는 하나, 그 기준에 쫓아 본다면, 6.13지방선거에서 기호는 민주당이 1번, 한국당 2번에 이어서 가칭 바른미래당 3번, 민주평화당 4번, 정의당 5번, 민중당 6번, 대한애국당이 7번이 될 것이 유력하다. 여기에 원외정당에서 후보를 낸다면 정당 명칭 가나다 순서로 8, 9번순으로 이어지고, 또 무소속 출마자가 있는 경우에는 후보등록 마감일에 추첨을 통해 10, 11… 등으로 선거 기호를 부여받게 된다. 위와 같은 내용의 출마 후보자 기호는 후보 등록 최종일(6.13지방선거의 경우 5월 25일) 마감시간인 오후 6시 직후에 확정될 것이나, 원내정당 예비후보자나 본 후보자들은 예비후보 등록 때부터 이미 기호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원외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은 기호를 알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법이 아닌 규칙으로써 사전에 기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는 위법성과 문제가 따르는 것으로 지적돼왔다.

공직선거사무규칙 제27조 제3항의 내용이다. “법 제61조(선거운동기구의 설치) 제6항의 규정에 따라 선거사무소와 선거연락소에 설치·게시하는 간판·현판·현수막에는 법 제150조(투표용지의 정당·후보자의 게재순위 등)의 규정에 따른 기호가 결정되기 전이라도 정당 또는 후보자(예비후보자를 포함한다)가 자신의 기호를 알 수 있는 때에는 그 기호를 게재할 수 있다”는 이 규정은 원내정당에게 유리하게 한, 그야말로 평등성에 반하는 기득권의 보장이 아닐 수 없다.

선관위는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수행하기 위해 설치된 헌법기관으로서 공정성이 생명이다. 그렇다면 헌법조문과 공직선거법상 평등과 기회균등을 철칙으로 지켜야 하건만 자체규칙으로써 공정선거의 기본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방선거, 총선에서 원내정당 후보자들이 기득권을 득 본 대신에 원외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큰 불이익을 당해왔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입니다’를 내세우는 중앙선관위가 민주주의에서 공직선거의 공정성이 필수적이고, 후보자의 평등권을 보장하는 것임을 제대로 안다면 선거 전에 문제조항을 고쳐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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